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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학의 장 제1막

천 리를 밝히는 달


일상 한담
페이몬이 갑자기 류운차풍진군이 해주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립다고 한다. 오장산에 가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 선인을 찾아가 보자
오장산으로 가기
페이몬:
요즘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네! 오늘은 잠시 쉬는 게 어때?
페이몬:
어디 보자, 어디로 놀러 가는 게 좋을까… 그래, 오장산을 둘러보자!
페이몬:
그 선조를 못 본 지도 오래됐잖아. 항상 걔가 갑자기 등장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으니, 이번엔 반대로 우리가 기습 방문해 보자구!
당신과 페이몬은 오장산에 도착했다…
페이몬:
다 왔다, 여기야!
페이몬:
여기 처음 왔을 땐 특별히 공물까지 준비했었지
페이몬:
제군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「리월항을 진압하겠다」며 길길이 날뛰던 모습이 생각나네. 그때만 해도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인 줄 알았는데, 전혀 그렇지 않았었지
페이몬:
이젠 꽤 친해졌으니까 공물이 없어도 만날 수 있겠지? 간식이 좀 남았으니까 혹시 찾으면 이거라도 주지 뭐!
페이몬:
응? 여행자, 뭘 그렇게 멍하니 봐?
페이몬이 당신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, 호수 중앙에 낯선 여인이 서 있다
페이몬:
그래? 와, 엄청 예쁜 여자네! 류운차풍진군을 찾으러 온 걸까?
여행자:
왠지 굉장한 선인일 것 같아
페이몬:
그러게, 아우라가 범상치 않아. 역시 걘 인맥이 대단하구나. 우리가 모르는 선인도 잔뜩 알고 있고!
페이몬:
어디 보자… 류운차풍진군의 친구라면 우리한테도 친구나 마찬가지잖아? 가서 인사나 해볼까?
페이몬:
헤헤, 네 인맥을 쌓아주는 것도 믿음직한 가이드의 일이지! 잘 보고 있으라구!
페이몬:
아, 안녕!
???:
……
페이몬:
저기… 난 페이몬이고, 얜 여행자(이)야
페이몬:
크흠, 만나서 반가워. 우리는 류운차풍진군의 친구인데, 넌 이름이 뭐야?
???:
너희 둘…
???:
뭐 하는 거지? 이 몸을 몰라보는 것이냐?
페이몬:
어라? 이 목소리는——
여행자:
진군?
페이몬:
어?! 그, 그 선조라고? 어떻게 인간 모습으로 변한 거야?
류운차풍진군:
나한테 변신술 따윈 식은 죽 먹기지. 예전엔 흥미가 없어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
페이몬:
그럼 왜 갑자기 흥미가 생긴 건데?
류운차풍진군:
음… 제자들을 만나러 리월항에 가려는데, 인간 모습으로 가는 편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
페이몬:
눈에 띄는 걸 신경 쓰긴! 저번에는 지붕 위로 단숨에 「슉」하고 내려앉았으면서!
류운차풍진군:
크흠…
여행자:
(류운차풍진군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…)
여행자:
참, 페이몬이 선물을 준비했어요
페이몬:
야, 물어보면 그때 주기로 했잖아!
류운차풍진군:
호오, 이렇게 예의를 잘 차리는지 몰랐군. 고맙네
무심해 보이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진군의 눈빛에, 페이몬이 마지못해 가방에 숨겨두었던 간식을 선물한다…
페이몬:
음… 조금 적은 것 같은데 괜찮아?
류운차풍진군:
난 생활에 부족함이 없어. 중요한 건 성의지. 마음만 느껴진다면 선물의 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
페이몬:
앗… 양심에 조금 찔리는걸. 그나저나 우리 방금 어디까지 말했더라?
여행자:
진군께서 제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셨어
페이몬:
맞다! 제자라… 감우랑 신학 말이지? 우리도 두 사람을 만난 지 꽤 됐는데, 같이 갈까?
류운차풍진군:
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다. 내 두 제자도 너희와의 재회를 고대하고 있을 테니까
류운차풍진군:
그나저나… 너희는 무슨 일로 여기까지?
여행자:
특별한 용건은 없어요
페이몬:
맞아,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이야기나 들으러 온 거야. 그런데 인간 모습으로 변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…. 전혀 못 알아봤다니까
류운차풍진군:
그랬군
류운차풍진군:
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금 출발하지. 감우는 아마 월해정에 있을 테니, 날 따라오면 만날 수 있을 거다
페이몬:
좋아. 그럼 우리 같이 리월항으로 가자!
월해정으로 가서 감우 만나기
류운차풍진군:
휴, 감우 그 아이는 늘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매년 오장산에 들르는 날이 손꼽을 만큼 적어
류운차풍진군:
신학도 최근 새로운 일을 찾았는지, 편지로 「당분간은 돌아가지 않는다」고 하더군
류운차풍진군:
흥, 내가 순순히 납득할 줄 알고? 두 눈으로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볼 것이다!
페이몬:
이제 곧 월해정이네. 감우도 인간 모습을 한 진군을 보면 깜짝 놀랄까?
페이몬:
감우랑 신학은 인간 모습을 한 선조를 본 적 있으려나… 어라? 진군이 어디로 갔지?
페이몬:
왜 멈춘 거야?
류운차풍진군:
쉿, 이 몸은 여기 있을 테니 너희끼리 그 아이를 만나고 오거라
페이몬:
엥? 왜 같이 안 가고?
류운차풍진군:
흥, 내가 찾아가면 그 아이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한가한 척 나를 맞이할 게 뻔하잖나. 그러곤 나중에 미뤘던 일 때문에 야근에 시달릴 테지
류운차풍진군:
이 몸은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족하니, 너희가 대신 가서 안부를 묻고 오거라. 참, 내가 왔다는 사실은 절대로 말하지 말고!
페이몬:
그것도 그렇네. 알았어, 그럼 대신 안부 전해줄게——
감우:
류운진군?
류운차풍진군:
!!
페이몬:
들켰다!
혜심:
감우 선배, 아는 분이세요?
감우:
네. 죄송하지만 다음 회의를 조금만 미룰 수 있을까요? 오늘 일정이 빠듯하긴 하지만, 밤으로 미뤄도 되는 일도 있으니까요…
혜심:
네. 걱정 말고 맡기세요, 선배
감우:
그럼 부탁할게요
페이몬:
감우, 안녕!
감우:
안녕하세요.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? 그리고 진군… 인간의 모습을 뵙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네요
류운차풍진군:
사람 잘못 봤군. 난 류운차풍진군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일 뿐이라네
감우:
…?
페이몬:
소용없는 거 같은데?
여행자:
전혀 속지 않았어요!
류운차풍진군:
크흠, 방금은 작은 시험이었다.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몸을 한눈에 알아볼 줄이야
여행자:
(감우는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이다. 「한때 매일 보던 사람이니 매일 덮던 이불만큼 알아보기 쉬운 게 당연하지 않나…?」라고 생각하는 듯하다)
감우:
진군을 알아보는 건, 음… 당연한 도리죠
류운차풍진군:
하, 그렇긴 하군
류운차풍진군:
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잠깐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들렀다
페이몬:
웬 중요한 일…? 아!
페이몬:
맞아, 「아주 중요한 일」이 있어! 그러니까 여기서 오래 지체할 수는 없다구
감우:
그렇군요… 모처럼 만났는데…
류운차풍진군:
네가 잘 지내는지 보러 들렀을 뿐,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. 다음에 네가 쉴 때 다시 모이자꾸나
감우:
알겠습니다. 그것도 좋죠…
류운차풍진군:
일이 바쁜 건 안다만, 쉬는 것도 잊지 말거라. 아무리 반신수의 몸이어도 과도한 피로가 쌓이면 몸이 상하기 마련이야
류운차풍진군:
휴, 이렇게 다 큰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구나. 소싯적엔 악몽을 꿀 때마다 안고 자자고 조르곤 했는데——
감우:
자, 잠깐만요… 류운진군!
류운차풍진군:
알겠다, 시간도 없으니 여기까지 하지. 너희끼리 얘기 나누거라. 이 몸은 여기서 듣고만 있겠다
감우에게 최근에 겪은 일들을 이야기한다…
감우:
저번에 헤어진 뒤로 정말 많은 곳을 누비셨네요.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월해정으로 와서 절 찾아주세요…
감우:
그리고… 진군, 인간 모습으로 변하신 김에 「인간」 이름을 하나 지으시는 게 어떨까요?
류운차풍진군:
인간의 이름이라? 하긴, 이 몸의 명성이라면 「류운」이라고 불러도 다들 쉽게 눈치채겠지
페이몬:
네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그 정도야?
류운차풍진군:
흥, 이 몸의 명성은 너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다. 감우의 말대로, 지금부터 사람들 앞에선 나를 「한운」이라 부르도록
페이몬:
한운?
감우:
아, 《청재광록》에서 따온 이름이군요
감우:
「구름과 함께 일어나 세월을 따라 사는 선인이 있었으니, 지혜롭고 이치에 밝으며,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서 『한』이라고 불렸다」
페이몬:
와, 굉장하다! 구름과 함께하고 세월을 따라 산다니——엄청나게 대단한 선인 같아!
감우:
사실 이건 류운진군을 묘사하는 구절이에요
페이몬:
뭐?! 잠깐, 너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선인이었어?
한운:
그럼? 설마 이 몸을 정말 큰 새 정도로 생각한 것이냐?
페이몬:
그, 그건 아니지만…
감우:
아무래도 진군께선 과거의 업적을 좀처럼 언급하지 않으시니까요. 각종 서적에서나 진군의 기록을 찾을 수 있죠
감우:
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리월에 대가뭄이 든 적이 있대요. 갈 곳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밤낮으로 기도하거나 고향을 떠났다고 하죠…
감우:
전 그 시절을 겪어보진 못했지만, 책에서 묘사한 내용만 봐도 당시 사람들의 절망을 엿볼 수 있어요
감우:
가뭄으로 인해 독기가 퍼져 나갔고, 광활한 땅은 눈에 띄게 황량해졌어요. 진군께서 나선 후에야 상황이 겨우 안정되었죠
감우:
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——
감우:
「선인이 오자 남은 구름이류운 모여들고 거센 바람이차풍 몰아쳤네. 두터운 구름이 세찬 비를 내리자 가뭄과 독기가 가시고 만백성이 구원받았네」
페이몬:
와, 그렇게 대단했다니!
한운:
속세의 책에는 과장된 단어가 많지. 난 그저 미약한 힘을 보탰을 뿐, 내가 아니어도 다른 선인이 도왔을 것이다
페이몬:
그치만 그 엄청난 규모의 가뭄은 네가 해결한 거 맞잖아? 너 정말로 비바람을 부릴 수 있는 거야?
페이몬:
완전 다시 봤어! 음… 전에 널 선조라고 부른 거 미안해. 화나진 않았지?
한운:
우습구나. 이름은 그저 속세를 거닐 때 쓰는 꼬리표일 뿐, 어찌 그걸로 화를 내겠느냐
페이몬:
휴, 그럼 안심이야. 앞으로는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를게, 헤헤
한운:
내 이야기는 이쯤 하고, 감우, 요즘 신학 그 아이와는 연락하고 지내느냐?
한운:
최근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던데 어떻지? 좋은 곳이더냐? 매달 급여는 몇 모라고?
한운:
업무량은 또 어떻지? 해등절에 휴가는 낼 수 있나?
페이몬:
단숨에 질문을 산더미처럼 쏟아냈어!
감우:
진군, 걱정하지 마세요. 신학의 일은 제가 소개해 준 거니까요
감우:
요즘 만민당이 바쁜데, 향릉 씨가 밖에서 새로운 요리를 찾는 중이라 묘 사부 혼자서는 벅찬 모양이더라고요. 그래서 신학을 소개해 줬어요
한운:
그랬군, 잘됐어. 그 부녀라면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. 향릉이란 아이는 총명하고 선량하며, 그 아비도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지. 신학을 힘들게 할 일은 없겠어
한운:
마침 식사 시간이로군. 직접 만민당에 가서 신학을 살펴봐야겠다
감우:
네? 하지만 아까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?
페이몬:
바, 밥 먹을 시간 정도는 있다구!
한운:
따라올 필요 없으니 마저 일 보거라. 앞으로도 모일 날은 많으니 지금 이 순간에 집착할 거 없지
감우:
네, 진군. 그럼 조심히 가세요. 여행자, 페이몬, 다음에 만나요
페이몬:
응, 또 봐!
페이몬:
휴… 어때? 나 방금은 제법 눈치 빨랐지?
페이몬:
「중요한 일」이란 말을 듣자마자 감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핑계란 걸 바로 알아차렸다구!
한운:
핑계까지는 아니다. 이번에 리월항에서 정말로 볼일이 있긴 하거든
페이몬:
어, 정말?
한운:
아직 때가 아니지만, 조만간 알게 될 거다
페이몬:
음… 아까 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? 갑자기 언행에서 신비한 선인의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…
만민당으로 가서 신학 만나기
문류:
무슨 말인지 알지?
강계:
그래, 알지. 미인 앞에선 미식조차 시시해진다는 거 아니겠어?
문류:
메뉴판보단 저쪽 연락처가 더 당기는데. 네가 한번 물어볼래?
강계:
네가 물어봐
문류:
아니, 그러지 말고 네가… 잠깐만, 이쪽으로 오고 있어!
신학:
뭘 주문하시겠어요?
강계:
저… 안녕하세요. 혹시——
신학:
주문?
강계:
헉!
문류:
모라육 2인분 포장이요…. 저, 저흰 이만!
페이몬:
신학——
신학:
어서 오세요, 오랜만이야. 뭐 주문할래?
페이몬:
이봐, 「접객 인사」랑 「안부 인사」를 같이 하지 말라구!
여행자:
오랜만이에요, 신학 씨
신학:
응
신학:
이분은…
페이몬:
헤헤, 이쪽은 「한운」이라고 해!
신학:
…스승님?
페이몬:
엥?!
한운:
허, 넌 이 모습을 본 적이 없을 터인데 어찌 단숨에 알아차렸느냐?
신학:
10년 넘게 함께 지냈으니까요. 스승님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셔도 알아볼 수 있어요
한운:
음…
신학:
왜 그러세요, 스승님?
한운:
별일 아니다. 네가 리월항에서 일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확인하러 왔지
페이몬:
겸사겸사 맛있는 것도 먹고!
신학:
하긴, 이제 곧 점심시간이네…. 미안하지만 난 일하는 중이라 오래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아
묘 사부:
오, 여행자(이)랑 페이몬이구나. 신학을 보러 왔니?
묘 사부:
신학, 아직 식사 시간이 안 돼서 손님도 별로 없으니 나 혼자서도 충분해
묘 사부:
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. 이따 손님 많아지면 그때 도와주고
신학:
감사해요
페이몬:
아싸!
앉아서 대화하기
한운:
역시 만민당의 주인은 융통성이 있는 자로군
한운:
그런데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접하게 될 텐데 괜찮겠느냐, 신학?
신학:
괜찮아요. 가끔 이상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, 이젠 적절히 처리할 수 있거든요
페이몬:
신학도 성장했나 보네. 근데 「적절히 처리」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?
신학:
일단 잘 타일러 보고, 그래도 말이 안 통하면 주먹을 꺼내. 그럼 알아서 말을 듣더라
페이몬:
아… 뭐랄까…
여행자:
문제없는 거 같은데?
한운:
좋구나. 이미 인간 사회에 잘 녹아든 듯하니 안심해도 되겠어
신학:
스승님은 잘 지내셨어요?
한운:
잘 지내다마다! 너희가 오장산에 안 돌아와도 혼자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지
신학:
역시 스승님이시네요
한운:
흐… 흥!
여행자:
사실 류운진군은 두 사람을 그리워했어요
신학:
그건 나도 마찬가지야. 그래서 일이 바쁘긴 해도, 조만간 스승님을 뵈러 오장산에 가겠다고 묘 사부와도 상의해 뒀어
한운:
그런 일이? 크흠, 다음에 편지 보낼 땐 그런 것도 미리 말하거라
페이몬:
선인은 심경 변화가 정말 빠르네…
신학:
참, 스승님. 이번에 오실 때 감우 사저도 보셨나요?
한운:
그래. 너처럼 일하느라 바쁜 것 같아서 안부만 묻고 헤어졌지
페이몬:
감우한테 「류운차풍」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들었어. 진군이 얼마나 대단한 선인인지 이제야 알게 됐다니까!
신학:
그렇구나. 그럼 나도 스승님의 과거 이야기를 해줄게
한운:
음?
신학:
무슨 문제라도 있나요, 스승님? 괜찮은 주제인 것 같은데
한운:
아니… 조금 갑작스러웠을 뿐, 상관없다. 어디 네가 내게서 말솜씨를 얼마나 배웠는지 보자꾸나
신학:
예전에 스승님은 소월축양진군과 속도를 겨루신 적이 있어. 패배한 소월축양진군께선 스승님은 날 수 있으니 너무 유리하다고 주장했지
신학:
그러자 스승님은 날지 않고 법보만으로 겨루겠다고 하셨고, 소월축양진군도 기꺼이 응했어. 그리고 대결 당일, 스승님은 아무도 본 적 없던 물건을 선보이셨지
페이몬:
오, 어떤 물건인데?
신학:
철로 만든 기관 차였어. 이름이 「전기 이륜 비기」였나…?
한운:
「전광 이륜 질주기」다. 이 몸이 장장 49일에 걸쳐 개발한 야심작으로, 선력만 주입하면 만 리를 달릴 수 있지
한운:
그러니 소월축양 녀석이 이 몸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않겠나? 네발로 힘껏 달려도 간신히 날 따라오는 게 한계였다
한운:
하지만 아쉽게도 전광 이륜 질주기는 산지 주행에 뛰어나지 않아 결승점 앞에서 뒤집히고 말았지. 승리가 코앞이었는데 정말 아쉬웠어… 계속 얘기하거라
신학:
이미 스승님이 다 말씀하셨는걸요
한운:
그런가? 휴, 아무튼 네가 하산하니 오장산에 관중이 없어져서, 더 이상 그 늙은이들과 겨뤄볼 흥미가 안 생기더구나
신학:
스승님, 외로우세요?
한운:
외롭다니? 허,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생을 지켜봐 왔는지 아느냐? 자신과의 대화로도 몇 날 며칠을 지새울 수 있거늘
한운:
이런 내가 외롭다니? 어처구니가 없구나!
페이몬:
……
한운:
뭐지? 그 표정은?
페이몬:
아무것도 아냐. 아까 감우한테서 네가 비바람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존경스러웠는데, 네가 입을 여니까 다시 내가 알던 선조로 돌아온 것 같아서
페이몬:
대체 어느 쪽이 류운차풍진군의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니까?
신학:
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님과 내가 좋아하는 스승님 모두 스승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해
한운:
흥! 하나같이 나한테 입바른 소리를 한다만, 결국 아무도 오장산에 남지 않더구나
한운:
하지만 네 말이 맞다. 이 몸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선인이니, 다른 이의 평가 따윈 필요 없지
페이몬:
류운 얘, 제자한테 칭찬 들었다고 콧대가 하늘을 찌를 기세야
보태:
자리 있나요?
지심:
사장님~ 여기 생선찜 하나 추가요!
신학:
…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네. 난 슬슬 일하러 가볼게
페이몬:
응, 신학 파이팅!
신학:
응. 열심히 할게
밥 먹을 준비하기
가게에 손님이 점점 많아진다. 페이몬도 단숨에 여러 요리를 주문했다
페이몬:
와, 푸짐하다! 이번엔 배 터지게 먹어야지!
한운:
난 다양한 미식을 즐겨서 특정한 맛을 고수하진 않는다
한운:
이 가게의 요리는 조리도 완벽하고 풍미도 독특해 아주 만족스럽구나. 다음 기관요리 신기의 영감이 떠오르는 맛이야
페이몬:
엄청 맛있다… 쬐끔 맵긴 하지만…
묘 사부:
미안, 꼬마야. 지금은 자리가 없단다
???:
할머니, 다른 가게로 갈까요?
???:
냄새가 참 좋은데… 여기서 먹을 수는 없겠나? 더 걷기가 힘들다네
묘 사부:
음… 그럼 합석할 손님이라도 찾아보시겠어요?
???:
네, 찾아볼게요
???:
안녕하세요. 실례지만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합석해도 될까요?
페이몬:
어, 난 괜찮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?
페이몬은 당신과 한운을 바라봤고, 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
수옥:
정말 감사합니다. 저는 수옥이라고 해요. 이분은 제 할머니 원대시고요
한운을 발견한 원대가 계속 그녀를 쳐다본다
페이몬:
「할머니」?
수옥:
네, 왜 그러세요?
페이몬:
아니 아니, 그냥 꽤 젊어 보여서…
수옥:
「학발동안」이라는 얘길 많이 들으시긴 해요. 실은 나이가 많으시답니다
원대:
……
원대는 시종일관 한운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고,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
수옥:
할머니?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말고 앉으세요
한운:
날 아는가?
원대:
아니네…
한운:
그럼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어서 앉으시게
수옥:
할머니,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? 제가 주문하러 갈게요
원대:
난… 지렁이 조림을 먹고 싶구나.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지렁이가 기어 나오곤 했지…
수옥:
할머니——또 시작이시네요. 메뉴판에 지렁이 조림 같은 건 없어요
페이몬:
지렁이 조림? 이상하네. 보통 그런 걸 주문하나…?
여행자:
자세히 물어볼까?
페이몬:
응, 그러자
페이몬:
안녕. 혹시… 도와줄까?
수옥:
네? 아… 할머니 말씀이세요?
수옥:
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. 할머니께선 심각한 「기억상실증」을 앓고 계시거든요.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져서 늘 엉뚱한 말씀을 하세요
수옥:
제가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할머니께선 기억을 잊기 시작하셨어요. 최근엔 증세가 심해져서 아침마다 제가 누군지 소개해 드려야 할 정도죠
여행자:
부모님은 어디 계시니?
수옥:
일찍 세상을 떠나셨어요. 지금은 저랑 할머니뿐이죠
페이몬:
아앗…
수옥:
아, 전 괜찮아요. 할머니도 절 사랑해 주시고 저도 할머니를 사랑하는걸요. 좀 힘들긴 해도, 지금의 생활이 싫진 않아요
페이몬:
와, 굳센 아이구나!
수옥:
칭찬 감사해요
원대:
그럼 나는? 나도 칭찬해 주련?
수옥:
할머니는 굳세고 상냥하면서 믿음직스럽기까지 하세요
원대:
그래, 난 모든 걸 다 잊은 건 아니란다. 아주 중요한 걸 기억하고 있거든! 음… 그게… 뭐였더라?
원대:
생각났다, 꿈이었어. 칠흑처럼 어두운 꿈속에서 누군가가 내 앞에 서서 말했지——그 여자만 찾으면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
수옥:
네?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신 거예요?
원대:
꿈이라서 그만 잊어버렸지. 방금은 기분이 좋아서 불쑥 생각이 나더구나
원대:
음… 이 꿈을 아주아주 많이 꾼 기분이 들어. 몇 번이나 꿨는지 기억조차 안 나…
페이몬:
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고, 꿈속에 있는 사람이 말을 건다니… 너무 이상한데! 잠깐, 설마… 귀신이라도 씐 건 아니겠지?
한운:
아니, 눈이 맑고 호흡이 평온해. 사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
페이몬:
진짜?
한운:
본 선인을… 아니, 날 뭐로 보는 것이냐
페이몬:
아, 맞다. 네가 이 분야의 전문가였지? 그럼 할머니, 그 꿈속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?
원대:
기억나지 않아. 다만… 젊은 시절의 나와 아주 닮은 것 같았지
수옥:
젊은 시절의 할머니요?
페이몬:
정말 기묘한 이야기네, 대체 어떻게 된 걸까!
한운:
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이 일은 내게 맡겨보겠나?
수옥:
정말요? 저…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?
페이몬:
난 페이몬이야!
여행자:
난 여행자(이)라고 해
한운:
한운이라고 부르게
수옥:
도와주신다니 정말 감사해요. 실례가 안 된다면… 어떤 보수를 원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?
페이몬:
보수는 필요 없어. 그치?
여행자:
단순히 흥미가 생겨서 도와주는 거야
수옥:
저, 정말 감사합니다!
페이몬:
뭘. 그나저나 한운, 어떻게 해야 이 할머니를 도울 수 있어?
페이몬:
꿈 이야기만으론 별다른 단서가 없어 보이는데
한운:
그거야 간단하지. 꿈속에서 젊은 자신을 봤다고 하니, 젊은 시절에 다니던 곳을 둘러보면 뭔가를 떠올릴 수 있을 거다
페이몬:
일리가 있네. 할머니, 혹시 젊은 시절에 갔던 곳 기억나?
원대:
기억나고말고. 하늘 위와 땅 아래, 하얀 구름과 푸른 산수 사이…
페이몬:
음, 기억 못 하는 것 같네
수옥:
저…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
수옥:
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, 할머니는 수십 년 전에 재해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지킨 아주 대단한 협객이셨대요
수옥:
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기록이 남지 않았을까요…
페이몬:
협객이라? 어디 보자… 그래! 행추는 무협 이야기에 조예가 깊으니까 쓸만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라. 비운 상회에 가서 물어보자!
원대:
벌써 간다고? 난 아직 배고픈데…
수옥:
제가 먹을 걸 시키고 올게요. 할머니, 특별히 원하시는 메뉴 없으면 알아서 시킬게요?
한운:
그럼 잠깐 찢어져야겠군. 여행자와(과) 페이몬은 비운 상회로 가고, 원대와 수옥은 남아서 밥을 먹고. 난… 잠시 가진낭시를 만나고 오마
페이몬:
가진낭시… 아! 평 할머니 말이지?
한운:
그래. 이따가 옥경대에서 만나도록 하지

비밀을 찾아서
만민당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원대와 수옥을 만났다. 연로한 원대는 이제 과거의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. 하지만 그녀가 과거 협객이었다는 점을 통해 조사를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
행추에게 원대에 대해 묻기
행추:
어, 여긴 어쩐 일이야?
페이몬:
행추! 있어서 다행이다. 너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왔어!
행추에게 원대의 상황을 설명한다
행추:
음… 참고할 만한 단서가 적어서 내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어
행추:
설명만으로 그분의 정체를 확신하긴 어렵지만, 나이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어. 바로 각종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「무명의 여협객」이야
페이몬:
무명의 여협객?
행추:
응. 50년 전 대가뭄 때, 속세를 누비며 요마와 도적들을 물리치는 무명의 여협객이 있었대. 수많은 사람이 칭송했지만 정작 아무도 그분의 이름을 몰랐다고 하지
행추:
알려진 거라곤 그분이 홀로 떠돌다가 뜻이 통하는 천형 도사와 맺어졌다는 것뿐이야. 둘은 늘 함께 싸워서 원앙 부부라고 불렸어
행추:
대가뭄이 끝난 후,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은거한 두 사람은 방해받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해. 그렇게 전설로만 남게 되었지
행추:
명성이 자자하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점이 원대 할머니와 비슷해 보여. 참고할 가치가 있을 거야
페이몬:
역시 행추! 아는 게 정말 많구나
행추:
과찬이야. 그저 한가할 때 책에서 보고 흥미 삼아 알아봤을 뿐인걸
페이몬:
그래도 대단해! 참, 혹시 그 무명의 여협객이 젊었을 때 어딜 다녔는지도 알아?
행추:
생각해 볼게. 음… 소설 속 무명의 여협객은 늘 이 세 곳에서 등장했어. 망서 객잔, 절운간, 그리고 경운봉
행추:
아마도 거기서 여러 일화와 전설을 남기지 않았을까? 그러니 후대 작가들이 이야기를 쓸 때도 그 장소를 무대 삼는 거고
행추:
하하, 별말씀을. 나도 책을 볼 때 의아한 부분이 많았는데, 원대 할머니가 정말 무명의 여협객 본인이라면 내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겠네
행추:
대부분의 협객은 은퇴한 후에도 각종 기담이 전해지기 마련인데, 무명의 여협객은 소식이 완전히 끊겼거든. 그래서 「큰 병」을 앓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
행추:
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걸까? 마치 뭔가에 쫓기듯이 말이야…. 거기엔 분명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야
페이몬:
진실을 알아내면 너한테도 알려줄게
행추:
고마워. 너희가 전해 주는 이야기가 책에 적힌 내용보다 더 흥미진진할지도 모르겠네
페이몬:
헤헤, 행추한테서 많은 단서를 얻었네. 대가뭄, 무명의 여협객, 그리고 은거… 어라, 왜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?
페이몬:
맞다, 그 이야기에서도 「대가뭄」이 등장했었지! 설마 리월에는 가뭄이 자주 발생하는 거야?
행추:
글쎄…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토양 개선이나 수로 개척 등 가뭄에 대비할 방법을 연구해 왔어
행추:
그래서 가끔 가뭄이 들어도 「대가뭄」 수준은 아니었지. 아까 언급한 대가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발생한 가뭄 중 가장 심각한 축에 속해
행추:
작물은 말라 죽고, 냇물은 바닥을 드러내고, 산속의 마물도 흉포해져 상단을 습격했지.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도적으로 전락했고, 결국 천재는 인화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어
페이몬:
정말 심각했구나…
행추:
맞아, 그러니까 무명의 여협객의 이야기가 이렇게 널리 퍼진 거겠지. 보상도 바라지 않고 힘쓴 걸 보면 분명 아주 정의로운 협객이었을 거야
행추:
물론, 그 심각한 재해도 고대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말이야
행추:
고대에는 각종 재해가 더 흉악하고 빈번하게 발생했대. 막강한 선인이 나서야 재해의 악영향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고 해
행추:
혹시 더 궁금한 거 있어?
페이몬:
이제 없어. 우린 슬슬 한운에게 돌아가 보자
페이몬:
할머니가 기억을 되찾으면 좋겠다. 모두를 구한 위대한 영웅이 그걸 다 잊어버린다면 너무 안타깝잖아
페이몬:
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. 잘 있어, 행추. 도와줘서 고마웠어!
행추:
별말씀을. 조심히 가
평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합류하기
평 할머니:
자네가 바라던 곡은 넣어뒀네.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
한운:
고맙네
평 할머니:
허허허…
한운:
가진… 아니, 평이, 왜 웃지?
평 할머니:
아닐세. 마지막으로 이 모습을 본 게 언제였더라 싶어서. 긴 세월이 흘렀건만 자넨 여전히 그대로군
한운:
산속에선 세월이 느껴지지 않지. 내게 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다네. 그나저나 평이… 궁금한 게 있는데 답해줄 수 있겠나?
평 할머니:
음? 갑자기 진지해지니 나도 괜히 긴장되는군. 무슨 일인가?
한운:
그… 그게…
한운:
자네처럼 리월항에서 유유자적하게 살려면 일 년에 몇 모라나 필요하지?
평 할머니:
그리 많이 필요하진 않네. 그건 왜——
페이몬:
류운진군, 평 할머니! 우리 돌아왔어.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?
한운:
크흠,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. 정보는 알아 왔나?
페이몬:
행추가 짚이는 게 있다고 하더라구…. 수옥이랑 원대 할머니가 오면 같이 얘기하자
잠시 후 원대와 수옥이 도착했다. 일행이 다 모이자 페이몬은 행추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…
수옥:
……
평 할머니:
꼬마 아가씨, 걱정하지 말고 차 좀 마시렴
수옥:
아, 감사합니다
페이몬:
어때, 수옥? 이 추측이 맞는 것 같아?
수옥:
그 무명의 여협객과 사랑에 빠졌다는 천행 도사는 제 할아버지일 수도 있겠어요
수옥:
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, 집 다락방에서 난해한 부적이 가득 든 상자를 발견한 적이 있거든요
수옥:
네, 거기로 가보면 할머니가 뭔가를 떠올리실지도 몰라요
원대:
참 좋은 차네. 이슬 맛이 느껴지는 게…
원대:
산속을 거닐듯… 마음이 편안해져…
평 할머니:
그런가? 마음에 들면 급할 것 없으니 더 마시고 가게나. 우리 나이에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
원대:
고맙네…
여행자:
좀 쉬다가 가자
수옥:
네. 그럼 잠깐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?
페이몬:
물론이지. 뭐가 궁금한데?
수옥:
음… 이건 제 비밀 얘기라서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요
수옥에게 비밀 이야기 듣기
페이몬:
무슨 일이야, 수옥?
수옥:
밥 먹을 때부터 여쭤보고 싶었는데요…. 여러분은 사실 선인이죠?
페이몬:
어?! 그… 그게…
여행자:
그건 갑자기 왜 물어?
수옥:
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, 한운 언니도 자기를 「본 선인」이라고 불렀잖아요
페이몬:
이봐, 진군… 네가 말실수한 거니까 네가 알아서 해명해
한운:
크흠…
한운:
그래, 이 몸이 바로 선인이니라. 문제 있나?
페이몬:
어?!
수옥:
역시…
여행자:
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네?
수옥:
사실 전 어렸을 때 백학 선인을 본 적이 있어요
수옥:
열이 펄펄 끓어 온몸이 뜨거운데 할머니는 곁에 안 계셔서 힘들어하고 있던 때였어요. 그때 새하얀 선학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죠
수옥:
그 선학은 절 선계로 업고 가서 단약을 먹여줬어요.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이 다 나은 채 집안의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고요
수옥:
계속 혼수상태였던지라, 결국 그 백학 선인께 감사 인사를 못 드렸죠
수옥:
그래서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쭙고 싶어요. 여러분은 백학 선인을 아시나요?
페이몬:
새하얀 학 선인이라? 우리는 하늘색이랑 흑갈색밖에 모르는데
페이몬:
진군, 넌 백학 선인을 본 적 있어?
한운:
흥, 순백의 학 선인은 책에 나오는 상상일 뿐, 나 또한 본 적이 없다
수옥:
이상하네요…. 그냥 꿈이었던 걸까요?
수옥:
아무튼 감사해요. 제 일은 중요하지 않으니, 할머니가 잘 나으시기만 하면 좋겠어요
페이몬:
걱정 마! 가볼 만한 장소를 세 군데나 알아냈으니까, 한 곳씩 돌아보면 될 거야
페이몬:
일단 망서 객잔부터 가보자!
수옥:
네, 그럼 전 할머니를 모셔 올게요
망서 객잔으로 가기
원대:
망서 객잔… 망서 객잔…
수옥:
할머니, 여기 기억나세요?
원대:
그럼, 여기 물고기가 참 맛있었단다.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을 보면 철새 무리에서 낙오된 녀석이 한 마리씩 보이곤 했지
원대:
그때 여기 살면서 창밖을 바라보곤 했는데, 그게 어느 집이었더라? 어디 보자…
수옥:
제가 같이 가드릴게요
페이몬:
잘 이해는 안 되지만, 아무튼 망서 객잔에 왔던 건 사실인 모양이네? 여길 잘 아는 것 같아… 어?
페이몬이 원대와 수옥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, 갑자기 소가 시야에 나타난다
페이몬:
으악! 소! 너, 너 왜 여기 있어?!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랐잖아!
소:
인간이 아닌 존재의 기운이 느껴져서 보러 왔어
소:
너희가 있다면 별일은 없겠지.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야
소:
…오랜만이군, 류운진군.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온 건가
여행자:
소도 류운진군의 인간 모습을 본 적 있어?
소:
응, 마신 전쟁 때 이 모습을 한 진군과 수차례 함께 싸웠으니까
페이몬:
정말? 마신 전쟁 때의 류운은 어땠어?
페이몬:
잠깐만, 내가 맞혀볼게… 그래! 이런 모습이었을 거야!
페이몬:
「이는 내가 새로 개발한 『쾅쾅발사 신기』이니라. 당장 투항하지 않으면 이 몸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주마!」
소:
꽤 비슷해
페이몬:
그치?
소:
물론 다른 점도 있어. 그때의 류운진군은 기관술뿐만 아니라 선가의 부적술에도 능통했거든
소:
귀종이 세상을 떠난 후 마신 전쟁은 더욱 거세졌고, 난 류운진군과 함께 여러 치열한 전투를 치렀어. 당시의 진군은 꽤 과묵한 편이어서, 부적을 부릴 때만 입을 열었지
페이몬:
말 없는 진군이라… 상상이 안 가는걸. 그다음엔? 인간 모습일 때 그렇게 굉장했는데 왜 선조로 돌아간 거야?
한운:
인간 세상을 떠났는데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나?
한운:
속세를 벗어나 산속에 은거하니, 한가로이 구름을 노니는 학의 모습이 더 어울리지
소:
전쟁이 끝난 뒤 류운진군은 오장산에 들어가, 대부분의 시간을 학의 모습으로 보냈어
소:
…그러다 30년 전에 인간 모습으로 나타난 적이 있는데, 그때는——
한운:
크흠. 그런 케케묵은 일은 언급할 필요 없다
멀리서 수옥과 원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
수옥:
할머니! 괜찮으세요?
원대:
아아… 그때 여기서 난…
소:
그럼 난 이만 가보지
소:
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이름을 불러. 물론 류운진군이 있으니 별문제는 없겠지만
소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고, 수옥과 원대가 가까이 다가왔다
수옥:
여러분, 할머니가 정말로 뭔가를 떠올린 것 같아요!
한운:
서두를 것 없으니 천천히 말하게
원대:
오래전, 난 이곳에 잠시 머물며 요양했네
페이몬:
어? 설마 행추가 말한 전설이 진짜였던 건가? 너 정말 병에 걸렸었어? 그래서 은거한 거고?
원대:
미안하지만… 무슨 병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구나. 기억나는 거라곤 아주 위중하고 치료할 방도가 없는 병이었다는 것뿐이야
원대:
망서 객잔에 머무는 동안 난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. 가끔 의식을 찾아 창밖으로 낙오된 새를 바라보면 어째서인지 눈물이 흘렀지
원대:
그러던 어느 날 한 여행 상인을 만났다. 내 증상을 들은 상인은 내게 「성혼단」을 팔았지
원대:
그 상인은 그게 선인의 피로 만든 단약이라 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, 복용하자 정말로 병세가 완화되었단다. 그 후로 수년간은 별문제가 없었지
여행자:
설마 「기억상실증」…?
페이몬:
잠깐, 「그 후로 수년간은 별문제 없었다」고 했지? 설마 젊었을 때 앓은 병이 지금 앓고 있는 기억상실증이야?
페이몬:
게다가 성혼단을 먹고 증상이 완화됐다고? 영문을 모르겠네…. 혹시 다른 단서 더 없어?
원대:
기억나지 않아. 휴…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나…
수옥:
할머니, 자책하지 마세요. 할머니가 계셔서 저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는걸요
원대:
아가, 괜찮다. 그냥 해본 말이야
한운:
기억은 차근차근 되찾으면 된다. 진전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. 슬슬 다음 장소로 가볼까
페이몬:
어디 보자, 다음은 절운간 북쪽이야
페이몬:
거기는 야외인데 어디서부터 둘러보지? 음… 그래, 집이 있는 곳부터 가보자!
페이몬:
어차피 살려면 집이 있어야 했을 거 아냐? 헤헤, 역시 난 똑똑하다니까! 이 속도면 원대 할머니의 기억도 금방 다 돌아오겠어!
절운간 북쪽에서 단서 찾기
페이몬:
할머니, 여기는 기억나?
원대:
으음… 와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
원대:
하지만 오래 머물진 않은 것 같아. 우연히 지나다가 잠시 쉬어갔을 뿐인지도 모르겠어
페이몬:
그렇구나… 괜찮아, 다른 곳도 가보자!
절운간 북쪽에서 단서 찾기
원대:
으음…
여행자:
떠오르는 게 있나요?
원대:
낯설구나… 여기엔 온 적이 없는 모양이야
원대:
다만 문득 드는 생각인데… 여긴 숨바꼭질하기에 참 좋아 보이는구나
페이몬:
엥? 갑자기 웬 숨바꼭질?
원대:
글쎄… 수옥이 어릴 때 자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아줘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
수옥:
에이, 「자주」는 아니었어요. 기껏해야 몇 번이었는걸요. 제가 술래를 잘 못해서 나중엔 거의 안 했잖아요
원대:
그러니? 그럼 내가 잘못 기억했나 보구나
페이몬:
아무래도 여긴 아닌 것 같아… 다른 곳으로 가보자
절운간 북쪽에서 단서 찾기
페이몬:
저기 버려진 집이 하나 있네. 잠깐 들어가서 쉴까?
원대:
여기는…
수옥:
할머니, 뭔가 생각나셨어요?
원대:
아아… 수옥아, 네 아빠는 바로 여기서 태어났단다
원대:
달조차 보이지 않는 밤이었어. 네 할아버지는 다친 날 부축하며 도망치고… 뒤로 펼쳐진 짙은 안개 속에서는 무언가가 우리를 쫓아왔지
원대:
배의 통증으로 더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나는 이곳에 몸을 숨겼다. 네 할아버지가 밖에 결계를 치긴 했지만, 바깥의 마물을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어
원대:
그날 밤, 난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기도했단다
원대:
「모든 건 제 잘못입니다. 부디 약속을 어긴 벌은 제게 내리시고, 이 아이만은 살려주세요」 하면서 말이야
페이몬:
잘못? 약속? 무슨 잘못을 했는데?
원대:
글쎄…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아.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자, 안개는 사라지고 햇빛이 비치더구나
원대:
건물 안에선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어. 바로 네 아빠였지. 난 아이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. 그게 내가 처음으로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어
수옥:
아버지는…
원대:
참 자랑스러운 아이였지. 그리고 수옥아, 너도 마찬가지다. 넌 네 아빠와 정말 닮았어…
원대:
너희는 나와 달라. 난… 아아… 난 뭘 했지?
수옥:
뭘 하셨든, 할머니는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
원대:
고맙구나, 수옥아. 네가 곁에 있어 준 덕분에 여기까지 와서 과거를 떠올릴 용기를 낼 수 있었어
원대:
자, 아직 마지막 장소가 남아 있지 않니? 어서 가보자꾸나
경운봉으로 가기
한운:
다음 장소는 경운봉이로군. 원대, 버틸 수 있겠나?
원대:
다리가 조금 불편하지만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 보지. 조금만 천천히 가 주면 고맙겠네…
한운:
타게, 내가 업고 가지
한운:
…가볍군
원대:
나이가 들면 다 이렇지 않나? 기억도 건강도 다 잃게 되잖나
원대:
그저 세상을 떠날 때만큼은 맑은 정신이길 바랄 뿐이네. 고통스럽거나 다른 이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…
한운:
걱정 말게, 그 소원 내가 반드시 이뤄줄 테니
페이몬:
휴, 드디어 도착했다
페이몬:
원대 할머니, 여기 기억나?
원대:
어디 보자…
원대:
…이상하군. 내가 여기서 지낸 적이 있던가?
원대:
아까 망서 객잔과 버려진 건물에서는 기억이 바로 떠오르진 않아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인상은 있었는데…
원대:
여기는 아무 느낌도 없다. 애초에 온 적이 없거나,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 없었던 모양이야
페이몬:
그럴 리가, 설마 책이 틀린 걸까?
여행자:
책이 무조건 옳다는 보장은 없지
페이몬:
하지만 이게 마지막 단서였는걸
페이몬:
앞서 두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수확이 있을 줄 알았는데…
원대:
실망시켜서 미안하구나
페이몬:
괜찮아!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으니까!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!
원대:
고맙다. 내가 기억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…
원대:
음? 저쪽에… 저 산은 어느 산이지?
페이몬:
어디 보자… 엥? 저건 오장산이잖아? 다시 돌아와 버렸네!
원대:
오장산, 오장산…
수옥:
할머니? 괜찮으세요?
수옥:
너무 무리하지 마세요. 기억 못 하셔도 괜찮아요…. 할머니가 힘든 건 싫어요
원대:
오장산. 나… 난 대체…
한운:
오장산이 낯이 익은가 보군?
원대:
그래. 하지만 난… 돌아갈 수 없어…
한운:
어디 불편한가?
원대:
머리가 좀 아프군…. 대체 난 어떻게 된 거지?
페이몬:
진군… 아니 한운, 뭔가 방법이 없을까?
한운:
오장산으로 가지
수옥:
하지만——
한운:
걱정 마라. 원대, 넌 충분히 잘해주었다
한운:
내가 있으니 이제 괜찮다. 오장산에 네 내면의 두려움을 잠재우고 기억을 되살려 줄 보물을 준비해 두었어
페이몬:
정말?! 언제 그런 걸 준비했어?
한운:
훗, 이 몸의 일 처리는 언제나 완벽하지. 오장산에 도착하면 다 알게 될 것이다

달콤한 꿈
마지막 단서는 뜻밖에도 오장산을 가리키고 있었다. 원대는 과거 오장산에서 살았던 걸까? 왜 류운차풍진군은 이 일을 얘기하지 않았을까? 원대가 뭔가 떠올릴 수도 있으니 오장산으로 돌아가 보자
오장산으로 돌아가기
페이몬:
이제 빨리 말해줘! 한운, 네가 준비했다는 보물이 대체 뭐야?
한운:
자, 여기 있다
페이몬:
어? 이건 우리가 오장산에 갔을 때 네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장치잖아! 네 새로운 발명품이야?
한운:
그래, 나의 새로운 야심작 「호몽유영 신기」다
한운:
이 신기는 주기적으로 주변에 미풍을 내뿜는데, 여기에 부드러운 선인의 음악을 더하면 듣는 이를 진정시키고 반수면 상태로도 만들 수 있지
한운:
쓰임새는 아주 많아. 근심하는 자에겐 불안을 달래주고, 피로한 자에겐 달콤한 꿈을 선사하지. 물론 기억을 잃은 자의 자아를 찾아줄 수도 있고
페이몬:
이렇게 좋은 물건을 왜 이제야 쓰는 거야?
페이몬:
처음부터 오장산으로 왔으면 됐잖아
한운:
아니, 아무리 신기라도 원대가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지 못한 상태로는 마지막 조각을 맞출 수 없어
한운:
선인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. 처음부터 나에게 기댔으면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거야
페이몬:
그렇구나… 근데 이건 또 뭐야?
한운:
앞서 말했듯 호몽유영 신기엔 선인의 음악이 필요하다. 그래서 가진낭시에게 연주를 부탁했지. 그녀의 연주가 가장 효과가 좋을 테니 말이야
페이몬:
후… 진짜네. 몸이 가벼워지는 게, 점심 먹고 잔디밭에 드러누운 기분이야! 조금 졸린걸…
한운:
어떤가, 원대. 좀 편해졌나?
원대:
……
한운:
아무래도 뒤얽힌 기억 속에 빠진 모양이군.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잠시 비켜주자꾸나
???:
대가뭄은 끝났잖아…. 그런데 왜 슬퍼하는 거야?
???:
「약효」가 끝나가고 있어…
???:
난 단 한 번도 널 만난 걸 후회한 적 없어
???:
제발… 안 돼…
???:
기억 안 나?
???:
넌 계속 이곳에 있었어야 했어. 이슬을 마시고 천지를 집 삼으며…
???:
바로 여기에. 최초의 「너」, 즉 최초의 「나」는… 원래…
원대:
아… 아아…
원대:
그런 거였어. 이곳이 익숙하게 느껴진 것도… 난…
수옥:
할머니!
페이몬:
원대 할머니! 괜찮아?
원대:
류운… 선군
한운:
……
한운:
…기억이 났느냐?
페이몬:
잠깐만, 방금 「류운 선군」이라고 했지…? 설마——
페이몬:
너희 아는 사이였던 거야?!
원대:
아아, 기억난다. 전부 기억나…
수옥:
할머니, 울지 마세요. 제가 있잖아요
원대:
걱정 말거라, 아가야. 난 괜찮단다…
원대:
다들 미안하구나, 나 때문에 참 많이도 돌아다녔어
원대:
마침내 가장 중요한 기억이 떠올랐다. 바로 내 「최초의 모습」 말이지
한운:
하아, 죄책감으로 감정이 조금 격해진 듯하군. 내가 대신 설명할 테니 마음을 추스르는 편이 어떻겠나?
원대:
아닙니다. 기억이 돌아왔으니 직접 마주해야지요
원대:
수옥아, 그리고 모두들… 정말 고맙구나.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련?
수옥:
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…. 정말이에요, 할머니.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할머니는 제 가장 소중한 사람인걸요
원대:
알고 있단다. 나도 그만큼 널 사랑하니까…. 그래서 더는 도망칠 수가 없어
원대:
과거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
페이몬:
절운간에서 말한 「잘못」 맞지?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?
원대:
…사실 난 인간이 아니야. 100년 전에 난 오장산에 살던 야생 학이었지
원대:
바람을 먹고 이슬을 마시며 살다 보니 어느새인가 지혜가 생겼더구나. 이곳의 주인이신 류운 선군께서는 날 발견하시곤 내게 많은 이야기와 수행의 비법을 알려주셨다
원대:
선군께서 직접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난 그분을 「스승」으로 여겼단다. 선군께서 기관술을 연구할 땐 옆에서 보고 배우기도 했지
원대:
가끔은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진짜 선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…. 50년 전까진 말이야
페이몬:
50년 전?
여행자:
그 「대가뭄」 때 말인가요?
원대:
그래. 선군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통해 난 선군이 가뭄을 몰아내고 백성들을 구한 일을 알게 되었어
원대:
선군은 내가 가장 동경하는 분이었고, 내 꿈은 그분 같은 선인이 되는 거였단다. 그래서 나도 세상을 떠돌며 만인을 구하고 싶었지
원대:
하지만 당시의 난 진짜 선인이 아니어서 변신술을 사용할 수 없었어. 선군은 그런 날 위해 특별히 「변신약」을 만들어 주셨지
원대:
그때 선군께선 약효는 단 10년만 지속된다며, 10년 후 다시 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영원히 학으로서의 과거를 잊고 짐승도 인간도 선인도 아닌 존재가 된다고 당부하셨다
페이몬:
설마… 그게 바로 「기억상실증」의 원인인가?
여행자:
당신은 학으로 돌아가지 않았군요…
수옥:
할아버지 때문인가요?
원대:
그래.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거든…. 인간이지만 줄곧 천형산에서 폐관 수련을 하다 처음으로 하산한 사람이었지
원대:
그는 나보다도 미숙하고 서툴렀지만, 나처럼 강한 열정을 품고 세상의 모든 고난을 씻어내고자 했어——
원대:
난 그런 그와 사랑에 빠졌단다. 하지만 약효는 짧더구나…. 10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,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난 결국…
페이몬:
세상에…
원대:
잘못을 범하고 말았지. 남은 생에 고난만이 가득해도, 인간도 선인도 아닌 괴물이 되더라도 난 그와 함께하고 싶었어
원대:
스승님의 기대를 저버려 뵐 면목이 없었던 나는, 오장산에 있는 선군의 거처 문 앞에 장문의 편지를 두고 왔단다
원대:
스승님이 이 혼인을 인정하실 리 없다고 생각해서 직접 말씀드릴 생각은 못 했어. 그리고 난…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먼 곳에 숨어버리고 말았지…
원대:
하지만 고난은 시작일 뿐이었어. 난 이상한 병에 걸려 기억 착란과 혼수 증상에 시달렸다. 억지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것에 대한 업보였지
원대:
학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잃으니 병의 원인조차 짐작할 수 없었어. 그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만 기억나서, 용서받기 위해 늘 기도했지
원대:
당시 망서 객잔에서 우연히 선인의 피가 들어간 단약을 구했기에 망정이지,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——
원대:
…!
수옥:
할머니? 왜 그러세요?
원대:
우연… 우연이라…? 그런 우연이 가능하단 말인가? 선인의 피… 아아, 설마——
원대:
선군, 설마 단약을 판 상인이 바로…
한운:
……
한운:
결혼하면 집안의 웃어른이 선물을 준비하는 게 인간의 풍습이라지? 단약은 내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거라
원대:
그랬군요…. 은거하고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제 착각이었을 뿐… 전 사실 제대로 숨지 못했던 거군요?
한운:
오장산에 있을 때 넌 숨바꼭질을 참 좋아했지. 학 떼에 숨어서 나더러 찾아보라고 하기도 하고
한운:
난 언제나 널 쉽게 찾아냈다. 학일 때도 그러했는데 인간일 때라고 뭐가 다르겠느냐?
페이몬:
자, 잠깐만. 나 이해가 안 되는데?
페이몬:
왜 갑자기 류운진군 얘기가 나오는 거야?
한운:
…됐다. 내가 직접 이야기해 주마
기억을 따라 진실 찾기(0/3)
한운:
원대, 난 네 편지를 읽고 몹시 화가 나서 널 꾸짖으러 가려 했다
한운:
솔직히 네가 고른 녀석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어. 천행 도사로서의 깨우침도 부족하고 부적을 다루는 실력도 보잘것없었거든
한운:
하나 한동안 지켜보니, 위중한 병이 걸린 너를 불평 한마디 없이 지극정성으로 돌보더구나
한운:
…성품은 나쁘지 않은 듯해 이 몸도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
한운:
이렇게 된 이상 비극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. 그래서 나는 각종 진귀한 약재와 내 피로 단약을 만들었다. 변신약의 부작용을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었지
한운:
그리고 단약을 네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다가… 결국 직접 행차하기로 했느니라
한운:
이 몸은 들키지 않으려고 특별히 위장술까지 익혔다. 모든 준비가 되고 나서야 망서 객잔으로 가서 상인의 모습으로 약을 주었지
한운:
넌 의심은커녕, 누구보다 가까웠던 나를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더구나
한운:
휴, 내 완벽한 위장술에 기뻐해야 할지, 낯선 사람 취급에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더군
기억을 따라 진실 찾기(1/3)
한운:
이 일은 그렇다 치고, 네게 중히 할 말이 있다
한운:
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한들, 선인의 피를 마시면 마물의 주의를 끌게 된다는 상식조차 잊었더냐?
한운:
허약한 몸으로 멋대로 돌아다니다니. 이 몸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 녀석과 저승에서 재회했을 거다!
한운:
평범한 마물은 이 정도로 모여들지 않는다. 아마도 마신의 잔재에 영향을 받은 거겠지
한운:
…어쩌면 그 마신의 잔재는 네 몸에서 나의 기운을 느껴 이토록 쫓아왔는지도 모른다
한운:
어쨌든 나도 마신 전쟁에 참여했으니, 개중엔 내게 「박살」 난 놈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
한운:
아무튼 무사했으니 됐다. 아침에 네가 우는 아이를 조심스레 껴안고 있는 걸 봤어. 평범한 존재가 아닌 내게도 너의 기쁨이 느껴지더군
한운:
…그걸로 족하다
기억을 따라 진실 찾기(2/3)
한운:
이렇게 된 일이다…
수옥:
잠시만요. 그럼 제가 어릴 때 본 백학 선인도——
한운:
오, 그 이야기를 깜빡했군
한운:
너도 원대처럼 늘 걱정을 끼치더구나
한운:
그해 고열이 난 너를 선계로 데려가서 치료해 주려고 하는데, 넌 날 보자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며 도무지 따라오려 하질 않았지
한운:
이유를 물으니, 이야기에 나오는 선학은 하얀색이라며 난 진짜 선인이 아니라는 거야
한운:
내가 몸에 분을 발라 깃털을 하얗게 물들이고 나서야 너는 신이 나서 내 등에 올라탔다
한운:
사실 인간 모습이 되기 전의 원대는 새하얀 학이었다. 휴, 원대의 원래 모습 한 번을 본 적이 없는데도 백학만을 선학이라고 여기다니…
한운:
뭐, 이 또한 인연일지도 모르겠어
한운과 대화하기
한운:
이야기는 여기까지다
한운:
원대, 나도 네게 사과하고 싶구나. 사실 난 만민당에서 널 마주친 순간 바로 알아봤어
한운:
내게 넌 감우, 신학과 똑같은 제자다. 이번에 리월항에 온 것도 네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주기 위함이야
한운:
하지만 네 정체를 직접 알려줄 수는 없었다. 그랬다면 이 기억은 「남이 전해준 이야기」가 될 테니까
한운:
기억은 자신이 직접 떠올려야만 의미가 있지. 설사 그 과정에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고 해도 말이다….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?
원대:
선군…
원대:
여쭙고 싶습니다. 진작에 절 찾아내셨으면서, 왜 오장산으로 끌고 가지 않고 제 잘못을 용서하셨습니까?
한운:
난 그걸 잘못으로 여긴 적 없다. 그건 네 「선택」일 뿐이야
한운:
아이가 날개를 펴고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는데 어른으로서 놓아주어야 마땅하지. 위험하거나 힘들 땐 의지할 곳이 되어주고 말이야
한운:
인간의 책에서는 그러한 장소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더군. 집, 둥지, 항구… 하지만 본질은 모두 같다
한운:
가는 자는 쫓지 않고 돌아오는 자는 막지 않는 것, 이것이 제자를 대하는 내 자세다. 너도 예외는 아니야
원대:
감사합니다. 정말 감사합니다…
한운:
…원대
한운:
너도 눈치챘겠지만, 네 기억상실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
한운:
40년 전 너는 미래가 없는 길을 택했지. 난 내 피로 단약을 만들었지만, 이는 그 길을 겨우 수십 년 연장했을 뿐이야
한운:
나도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. 이대로 가다간 넌 「인간」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아가 없는 마물로 전락할 게야
한운:
…다만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덕분에 최악의 결말만은 피할 수 있게 됐다. 난 거들기만 했을 뿐, 이는 네가 스스로 노력한 결과니라
수옥:
그럼… 할머니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?
한운:
난 이 아이를 다시 평범한 학으로 만들 것이다. 연이 따라준다면 언젠간 다시 지혜를 얻게 되겠지
페이몬:
평범한 학으로 변한다니…
여행자:
다른 방법은 없나요?
원대:
선군,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해주셨습니다
원대:
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. 저에겐 이미 최고의 결말이에요. 다만… 잠시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?
한운:
…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두르거라
수옥:
할머니… 안 가면 안 돼요? 저한텐 할머니밖에 없단 말이에요…
원대:
아가, 슬퍼하지 말거라. 충분히 후회 없는 삶을 살았건만 너라는 미련은 내려놓을 수가 없구나
원대:
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. 한창 클 나이니 배불리 먹어야 해. 할머니가 없는 동안에도 스스로를 잘 돌보렴
수옥:
네, 꼭 그럴게요…
원대:
착하구나. 괜찮다, 할미는 학으로 변해도 오장산 최고의 학이 되어 수련에 매진할 테니
원대:
그럼 이 할미도 언젠간 변신약 없이 인간이 될 수 있을 게다. 그때가 되면 우리 다시 같이 살자꾸나, 알겠지?
수옥:
네…
원대:
옳지. 지금은 잠깐 헤어지지만,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다 보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다
수옥:
밥 열심히 챙겨 먹으면서 기다릴게요.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거예요!
원대:
착하구나. 한시름 놨어…
원대:
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, 선군. 고맙습니다…
말을 마친 원대는 학으로 변해 멀리 날아갔다
수옥:
흑… 흐윽…
페이몬:
수옥…
한운:
두거라. 저 나이에는 우는 것도 일종의 해소법이니까
한운:
고통과 슬픔, 괴로움을 눈물에 담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.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
한운:
이제 모든 게 일단락됐으니 너희도 긴장 풀고 좀 쉬거라. 힘들면 내가 깨워줄 테니 잠시 눈을 붙여도 좋아
movie
울다 지친 수옥은 잔잔한 멜로디를 들으며 서서히 잠들었고,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당신과 페이몬도 주변에 누웠다. 따스한 햇빛이 포근하게 몸 위로 내려앉자 일행은 천천히 꿈속 세계로 빠져들었다. 꿈속에서 당신은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원대가 수옥과 만나는 것을 본다. 그 장면을 보며 당신은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. 그때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. 당신이 돌아서자, 그곳에는 여동생이 서 있었다. 당신은 너무나 기뻐하며 여동생에게로 달려갔고, 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. 당신과 여동생은 바닷가를 산책하고, 망서 객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, 아산파의 노점에서 장난감을 고르고, 모닥불 옆에서 야영을 했다…. 이런 삶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빌었다.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실이었다. 그런 당신의 상태를 알아차린 류운이 자기 옆에 앉으라고 눈빛을 보내며 자신의 언어로 당신을 위로했다.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
페이몬:
흠냐… 구운 새 다리다, 헤헤…
페이몬:
어…? 나 방금 잠들었었어?
한운:
……
페이몬:
앗, 방금 그건 너 얘기 아니야! 꿈속에서 구운 새 다리를 먹고 있었다구!
수옥:
선군님…
페이몬:
수옥, 일어났구나. 좀 괜찮아졌어?
수옥:
네. 감사합니다,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….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아요
수옥:
선군님,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…. 혹시 저를 제자로 삼아주실 수 있나요?
한운:
응? 왜 그런 생각을 했지?
수옥:
할머니께선 그때의 선택을 잘못으로 여겨 줄곧 자책하셨어요
수옥:
하지만 전 바로 그 선택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던걸요
수옥:
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제게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어요. 그러니까 저도 할머니의 꿈을 이어가고 싶어요——
수옥:
선군님처럼 대단한 선인이 돼서,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!
한운:
따지고 보면 너도 원대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평범한 「인간」은 아니지…. 네 결심은 알겠다. 제자로 삼아주마
수옥:
감사합니다, 선군님. 아니… 스승님!
페이몬:
수옥, 다시 한번 생각해 봐
페이몬:
류운진군의 두 제자는 매일같이 쓴 약재를 먹고 산다구. 청심이나 유리주머니 같은 거 말이야…
페이몬:
이 녀석을 스승으로 모시면, 앞으로 만민당에서 맛있는 걸 먹는 일은 꿈도 못 꾸게 될걸!
한운:
허, 그게 무슨 소리지? 내가 언제 그런 규칙이라도 정했더냐?
한운:
수행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. 마음만 맑고 깨끗하다면 무엇을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아
페이몬:
말은 그렇게 해도 여기엔 맛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!
한운:
확실히 오장산은 아름답지만 사람 사는 느낌은 덜하지
한운:
그래서 앞으론 리월항에서 살아볼까 한다. 수옥은 내 속세에서의 첫 제자가 되겠지
페이몬:
뭐?! 리월항에서 산다고?!
여행자:
그래서 인간 모습으로 변한 거였군요!
한운:
이 몸은 사는 곳을 신경 써본 적이 없다. 늘 마음의 평안만을 추구했지
한운:
하나 감우와 신학… 그리고 원대까지, 내가 거둔 제자들은 모두 리월항에서 인간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더군
한운:
안 그래도 요 몇 년 사이 내 교육 방침이 잘못돼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
한운:
대체 리월항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아이들이 머무르게 된단 말인가?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. 그러니 직접 살아보는 수밖에
한운:
음? 왜 말이 없지?
페이몬:
너,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라 그만… 그러니까, 앞으로 리월항에 가면 너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지?
한운:
리월항에 가도 해야 할 일은 많다. 너희와 매일 한가롭게 놀아줄 시간은 없어! 하지만 뭐… 여유가 있을 땐 잠깐 만나는 것도 괜찮겠지
한운:
아무튼 난 「인간」의 신분으로 리월항에 내려가는 것이니, 실수로라도 내 진짜 신분을 밝히진 말거라
페이몬:
걱정 마, 비밀 꼭 지킬게!
페이몬:
그럼 우린 언제쯤 리월항에서 만날 수 있어?
한운:
이틀 후? 「집에선 검소하게, 나설 땐 넉넉하게」라는 말이 있지. 그래서 살림이 궁핍하지 않도록 선계의 일부 법보와 발명품을 팔 예정이야
한운:
그리고 리월항에 집을 한 채 마련할 생각이다. 저번에 리월항에 갔을 때 흘호암 근처에 있는 집을 눈여겨봐 놨었거든…. 여기에도 비용이 들겠지
페이몬:
정말 꼼꼼하네!
페이몬:
그럼 이틀 뒤에 리월항으로 보러 갈게! 괜찮지?
한운:
그래. 이틀 뒤에 만나도록 하지
한운:
아, 그리고 이 호몽유영 신기는 너희에게 기념으로 주마. 고민거리가 생기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혀도 좋겠지
페이몬:
와아! 고마워, 선군님!
리월항으로 가서 한운 찾기
한운:
기우일세. 전부 평범한 보물이 아닌가? 뭘 그리 걱정하는 거지?
소조:
하하, 사실은… 손님의 태도가 조금 마음에 걸려서 말이죠…
소조:
이게 어딜 봐서 평범한 보물입니까? 마을 하나를 통째로 살 정도로 엄청난 것들뿐이잖습니까! 만에 하나 속아서 손해라도 본다면, 한평생을 애써도 못 메꿀 겁니다
소조:
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죠…
페이몬:
류… 아니, 한운! 우리 왔어. 무슨 일이야?
한운:
마침 잘 왔다! 이 무지한 녀석이 감히 이 몸의 법보를 가짜라고 의심하고 있어!
한운:
수백 년 동안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귀중한 소장품이거늘, 감히 가짜라니?
소조:
수백 년이요…?
한운:
크흠! 지,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라는 뜻이네.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!
페이몬:
맞아, 맞아. 우리가 증명할 수 있어!
한운:
들었나? 모라가 필요하지만 않았으면 절대 안 팔았을 걸세.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거늘
한운:
정 의심된다면 다른 구매자를 찾을 수밖에 없겠군
소조:
어휴, 손님! 고정하세요. 저는 이 정도로 희귀한 물건을 감정할 능력이 없어서 말이지요. 전문가분을 초청했으니 그분이 오실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
한운:
전문가라? …뭐, 그럼 기다려 보도록 하지. 여행자, 페이몬, 여기가 내가 새로 구한 집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이리로 찾아오거라
수옥:
스승님… 아, 두 분, 안녕하세요
페이몬:
수옥! 옷이 바뀌었네? 예쁘다!
수옥:
네, 스승님이 만들어 주셨어요. 저도 마음에 들어요
페이몬:
너 그런 재주도 있었구나!
한운:
「그런 재주」? 장치를 쓰면 재봉술 따위는 손쉬운 일이지
수옥:
스승님, 제 물건은 대충 다 옮겼어요. 무거워서 못 옮기겠는 건 밖에 뒀는데…
한운:
괜찮다. 내가 이따가 들여놔 주마
수옥:
앗, 아직 정리가 다 안 돼서 엉망일 텐데… 스승님, 저 다시 정리하러 가봐도 될까요? 훔쳐보시면 안 돼요! 저… 정말로 엉망이거든요…
한운:
숨길 것도 많군. 가보거라
한운:
자네가 말한 그 전문가는 언제쯤 오지?
소조:
곧 옵니다, 곧——아, 왔네요!
소조:
자, 소개 드리겠습니다. 왕생당의 객경이자 감정 전문가이신 종려 선생님이십니다!
소조:
종려 선생님, 이분은 한운 씨입니다. 아까 말씀드린 그 보물들의 판매자시죠
종려:
……
한운:
……
종려:
오! 한운 씨였군. 정말 오랜만이오.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소
한운:
크흠! 조… 종려 씨도 그동안 잘 지내셨소?
종려:
덕분에. 얼마 전엔 산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, 요 며칠은 새로운 차를 맛보기도 했소. 아주 즐거웠지
소조:
오, 두 분께서 아는 사이셨군요
종려:
인연이 있지. 한운 씨 역시 업계에서 유명한 감정가로서, 감상부터 수집, 평가까지 두루 능한 전문가라네. 이분의 매물을 구매한다면 필시 큰 이득이 될걸세
한운:
종려 선생은 참으로 겸손하시군. 세상에 감정가가 아무리 많다 한들 전부 경험과 안목에만 기댈 뿐, 당신보다 뛰어난 자가 어디 있겠소?
종려:
허허, 과찬이오. 한운 씨도 여전히 겸손하시구려
한운:
하하, 별말씀을
소조:
어…
소조:
저, 무례한 줄 알지만 하나만 여쭙겠습니다
소조:
오래 알고 지내신 사이 같은데… 호, 혹시 두 분이 짜고 저 같은 소상인을 속이고 계신 건 아니죠? 하하…
한운:
뭐? 그게 무슨 소린가? 하늘이 무너져도 이런 일로 자넬 속일 일은 없네!
종려:
음, 거래는 신용이 중요한 법. 믿기 어렵다면 우린 이만 가보겠네
한운:
더 말할 필요도 없소. 가지!
소조:
아니 아니, 아닙니다! 제가 실언했습니다. 종려 선생님이 보장해 주시는데 안 믿을 리가 있겠습니까! 한운 씨, 잠시만요——!
페이몬:
……
여행자:
……
소조:
크흠… 아까는 무례를 범했군요. 정말 죄송합니다. 그럼… 종려 선생님이 보시기에 이 보물들은 어떻습니까?
종려:
걱정할 것 없네. 모두 보기 드문 수집품일세. 예컨대 이것은 용도를 모르더라도, 절묘한 구조만 보고 호화 저택에 장식할 가치가 있지
종려:
이것 또한 외형이 수려하고 선이 매끄러워 기관술의 오묘함이 담겨 있군
종려:
자네는 식견이 넓으니 기관이 세간에 잘 전해지지 않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건 알겠지? 나라면 이 소장품을 전부 매입했을 거라네
소조:
좋습니다! 제가 모셔 온 분의 말씀이니 믿겠습니다
소조:
한운 씨, 이 보물은 제가 전부 매입하겠습니다. 다만 금액이 너무 커서 그런데, 일단 북국은행을 통해 계약금부터 드려도 괜찮으실지요?
한운:
북국은행? 아, 그 대형 표호를 말하는 거로군. 그러시게
소조:
하하, 표호라는 말은 이젠 아무도 안 씁니다. 다들 은행이라고 부르죠. 그럼 전 가서 대금을 구한 다음, 다시 물건을 받으러 찾아뵙겠습니다
한운:
휴우…
페이몬:
종려!
종려:
그동안 잘 지냈나?
페이몬:
우린 잘 지냈어! 너는 어때? 자문도 해주고~ 헤헤, 일이 정말 많네!
종려:
나도 잘 지냈네. 차를 마시다가 아까 그자의 부탁을 받아 살펴보러 왔지
종려:
한운, 정말 성에 살 생각인가?
한운:
…「한운」이라고 부르지 마시오. 조금 이상하군
종려:
뭐가 이상하지? 우리는 친구 아닌가
한운:
물론 그렇긴 하지만…
한운:
휴, 됐소.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시오. 어차피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것이니
종려:
하하, 류운진군도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모양이군
한운:
그렇소. 전에 리월항에 잠깐 들렀을 땐 이곳의 번화함을 느끼지 못했는데, 막상 살겠다고 결심하니 속세의 시끌벅적함이 느껴지더군
한운:
천 년 전과는 정말 다르오
종려:
인간은 파도와 같아 밀려들 땐 떠들썩하고 떠날 땐 조용하지. 또한 떠들썩함 속엔 차분함이 있고, 조용함 속엔 활기가 있어. 그 활기가 곳곳에 퍼져 있으니, 천 년 후에는 또다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을걸세
페이몬:
자자, 감상에 젖는 건 거기까지! 분위기가 다운된다구
한운:
그렇긴 하군. 오늘은 보물도 팔렸으니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하겠소. 「죽순 수프」가 어떤 맛인지 참으로 궁금하더군
종려:
음? 류운진군, 잊은 것인가? 전에 내가 그 요리를 만들 때 자네도 옆에 있었으니 맛봤을 텐데
한운:
그런 일이 있었소? …언제?
종려:
옛 지기끼리 모인 자리였지. 수백 년은 된 일이네. 아마 자네는 다른 사람보다 손이 느려 국을 제때 못 따른 것이 아닌가 싶군
한운:
허! 느리다니? 내가 양보했다면 모를까. 못 믿겠으면 이따가 구름을 가르는 날렵한 장법을 선보여 주겠소
한운:
그럼 그렇게 알고, 오늘은 죽순 수프, 모라육, 꽃게알 두부, 고기죽순데침… 전부 다 시켜주겠소
한운:
감우와 신학에게 자리를 예약해 두라 일렀으니, 이따가 제자들에게도 새로운 사매를 소개해 줘야겠구려. 자, 다들 따라오시오
종려:
좋지
여행자:
감사해요, 진군!
한운:
수옥!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. 참, 이분은 종려 선생님이시다. 지금은… 음…
종려:
지금은 왕생당에서 일하고 있지. 만나서 반갑네
수옥:
안녕하세요, 종려 선생님
페이몬:
다 모였으면 어서 출발하자!
수옥:
네! 스승님, 혹시 선도장 드셔보셨어요? 선인이 먹으면 정말로 담을 넘나요?
한운:
음, 그렇진 않겠지?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만…
페이몬:
어? 다들 왜 그렇게 빨리 걷는 거야!
페이몬:
이봐, 너희들——좀 천천히 가!