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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볕의 복숭아 부적·두 번째

왕생당 당주 실종 사흘째·움직이는 옥경대


왕생당 당주 실종 사흘째·움직이는 옥경대
해등절이 다시 돌아왔다. 올해 리월항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…
페이몬:
장의사 언니, 우리 또 왔어
나루터지기:
어서 와, 당주님 찾으러 온 거지? 근데 당주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어
페이몬:
어? 이틀이나 지났잖아? 호두가 아직도 안 돌아왔다구?
여행자:
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?
나루터지기:
음… 자주는 아니지만, 처음 있는 일도 아니야. 당주님 성격이 워낙 유별나잖아? 보름 가까이 안 나타나신 적도 있었어
페이몬:
흠, 듣고 보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네, 호두는 역시 호두구나
가명:
이야! 旅人(이)랑 페이몬이잖아! 오랜만이다, 야! 해피 해등절!
페이몬:
가명이잖아! 오랜만이야!
여행자:
해피 해등절, 가명
페이몬:
헤헤, 이런 데서 다 만날 줄은 몰랐네?
가명:
침옥 협곡으로 호송 갈 일이 생겼거든. 마침 아버지가 명절엔 꼭 집에 오라고 재촉하셔서,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지
페이몬:
잠깐만! 왕생당에서 침옥 협곡으로 보내는 물건이라니… 설마… 비운 상회야?
가명:
농담이지? 페이몬, 너 솔직히 말해, 어디서 점술이라도 배웠어? 어떻게 알았대?
페이몬:
아하하, 이틀 전에 행추한테서 얘기를 좀 들었거든…
가명:
깜짝이야, 어디서 정보가 샜나 했네. 호송국이 이번 일은 조용히 처리하라 했거든…. 너희가 알고 있으면 더 숨길 필요는 없겠다, 야
가명:
장의사 누님, 물건은 다 준비됐죠? 수량 확인만 하고 문제없으면 바로 동료들을 부를게요
나루터지기:
다 준비됐어. 안내해 줄게, 확인해 봐
페이몬:
잠깐만 가명, 물어볼 게 있어. 백출이 계속 큰 어르신을 구할 방도를 찾고 있다고 했는데, 아직 효과가 없는 거야?
가명:
백 선생님 일은 나도 잘 모르겠어…. 근데 비운 상회의 큰 도련님이 오늘은 준비하기 좋게 미리 물건을 돌려보내는 거라시더라
가명:
그냥 다방면으로 준비하는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,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
페이몬:
그랬구나. 旅人, 우리 행추한테 가 보는 게 어때?
가명:
행추? 이미 그쪽 형님이랑 같이 침옥 협곡에 갔어, 야. 조상님 집에 수리할 곳이 있나 없나 확인한다나…. 아마 헛수고일 거야
페이몬:
엑? 어째 또 불길해지는데…
여행자:
이따 백출 씨한테 가서 물어보자
페이몬:
응! 백출이라면 지금 상황에 대해 잘 알 거야
가명:
그럼 나도 일하러 가 볼게, 나중에 같이 차 한잔하자!
페이몬:
백출! 여기는 어쩐 일이야? 마침 너를 찾아가려던 참이었어
백출:
너희도 양반은 못 되는구나. 백출도 너희를 찾고 있었어
백출:
아, 旅人 님, 간곡히 부탁드릴 일이 생겼습니다
여행자:
큰 어르신께 문제가 생긴 건가요?
백출:
큰 어르신은 아직 괜찮아요. 지금 문제는 치치입니다
페이몬:
치치가? 왜? 치치도 쓰러졌어?
백출:
며칠 전 약초를 따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. 원래라면 당일에 돌아왔어야 하는데…
페이몬:
그… 약초가 따기 어려운 높은 산에 있다거나, 아님 놀고 싶어서 다른 곳에 갔다거나 한 건 아니야?
백출:
치치는 특수한 체질입니다. 출발하기 전에 항상 귀가 시간을 정해놓고, 그걸 치치의 수첩에 적어놓죠
백출:
수첩의 규칙은 이래. 약초를 못 따도, 괜찮다. 귀가 시간을 넘기는 것, 안 된다. 근데 귀가 시간이 벌써 하루를 훌쩍 넘겨 버렸다고
페이몬:
뭐?!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?
백출:
없었어, 그래서 치치가 산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인 거야. 어제 모험가 길드에도 의뢰를 올렸어
백출:
모험가들과 자주 교류해 본 터라, 전부 비범하지만은 않다는 걸 압니다. 그들에게만 맡겨두는 건 안심이 되질 않아요
백출:
그래, 오늘 아침엔 발 빠른 모험가 하나가 겁에 질려 돌아와서는, 치치가 사라진 장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더라. 치치는 당연히 못 찾았고
백출:
지금 저희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
여행자:
치치가 약초를 따러 간 곳은 어디죠?
백출:
경책 산장, 무망의 언덕입니다
페이몬:
또 경책 산장이야?
백출:
음, 어쩌면… 경책 산장에 정말로 저희가 모르는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네요
백출:
어제 또 새로운 환자 둘을 진료했는데, 데마로우스 씨와 큰 어르신의 증상과 똑같았어요
여행자:
일단 이건 나중에 얘기하죠. 저희는 바로 출발할게요
페이몬:
그래, 일단 치치를 찾는 게 급선무야. 우리 쪽 소식은 나중에 알려줄게
백출:
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
페이몬:
우와! 소 엄청 빠르다!
소:
경계는 이 근처에 있을 거야
페이몬:
그나저나, 소도 경계를 여는 법술을 할 줄 알아?
소:
생사의 균형은 늘 왕생당이 맡아 왔어. 나는 그에 관한 법문은 전혀 몰라
소:
다만 지금은 이변 때문에 경계에서 넘쳐 나온 죽음의 기운이 있을 테니, 그걸 찾으면 돼
소:
나자의 춤!
페이몬:
대단해… 소는 죽음의 기운을 볼 수 있는 거야?
소:
삼안오현은 이상을 알아챌 수 있어. 그게 죽음의 기운인지는 가보면 알겠지. 가자
페이몬:
이것 봐! 이거 남연의 등나무 인형 아냐? 남연도 여기에 왔었던 걸까?
여행자:
그럼 호두도 왔었을 수 있어
페이몬:
그 둘이라면… 아, 알겠다! 호두랑 남연은 귀신을 잡으러 온 거야!
페이몬:
모험가 길드 사람이 무망의 언덕에 귀신이 나온다 했잖아. 호두는 그런 쪽에 해박하고, 남연의 등나무 인형에 항마인이 있었으니까, 남연도 잘 알 거야!
여행자:
그럼 치치는?
페이몬:
으… 생각 좀 해볼게… 치치는 강시고, 강시는 뻣뻣해서 달리기가 느려. 그러니까 귀신한테 잡혀서 실종된 거지!
여행자:
논리는 있는데, 딱히 신뢰는 안 가네
페이몬:
흥, 그냥 근처를 좀 더 찾아보자.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
페이몬:
어? 무슨 소리지?
페이몬:
으악! 진짜 귀신이 있는 거 아니야?!
야란:
거기 둘, 기다려
페이몬:
야… 야란이잖아?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?! 휴, 진짜 귀신이 나오는 줄 알았다구…
야란:
훗, 풋내기 모험가들 몇 명은 겁줘서 쫓아냈는데, 너희한테는 안 먹히나 보네. 이 앞은 위험하니까 더 들어가지 마
페이몬:
하지만… 우리는 치치를 찾으러 온 거야. 치치가 이 근처에서 실종됐는데 지금 많이 위험할지도 몰라
야란:
그 일이라면 알고 있어. 모험가 길드의 정보원에게 보고를 받았거든
야란:
산 중턱에서 약초 바구니를 발견했어. 치치의 물건 같은데, 정작 본인은 여기에 없는 것 같아
페이몬:
뭐? 치치가 이 산에 없다구?
야란:
이 부근은 내가 이미 샅샅이 조사했어.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가 그나마 안전한 편이고, 더 들어가면 뭐가 있을지 몰라
여행자:
야란도 치치를 찾고 있어요?
야란:
아니, 나는 이곳에서 벌어진 이변에 대해 조사하고 있어
야란:
약 한 달 전, 총무부에서 경책 산장의 노인 환자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고, 전부 미지의 질병을 앓고 있다는 걸 발견했거든
페이몬:
아, 백출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! 경책 산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더라
야란:
우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근원은 경책 산장 내부가 아니라, 우리가 있는 이곳 무망의 언덕에 있어
야란:
경책 산장의 노인들은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, 청년들보다 노쇠하니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거지
페이몬:
무망의 언덕이었구나…
여행자:
호두와 남연이 뭔가를 알지도 몰라요
페이몬:
맞아, 그런데 그 둘도 지금 사라졌어…
야란:
어디에 있을지 짚이는 곳이 있어
페이몬:
어디?!
야란:
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곳. 따라와, 먼저 돌아가서 응광부터 만나자
페이몬:
응… 응광을?
야란:
표정이 왜 그래? 이렇게 많은 비밀을 알려주고 나서, 너희를 쉽게 놓아줄 거라 생각했어?
페이몬:
뭐?!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?!
야란:
농담이야. 호 당주 일은 응광이 자세히 알고 있거든. 지금 상황과 조합해 보면, 호 당주와 남연, 치치는 한 곳에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
야란:
가자, 응광을 만나면 알 수 있을 거야
북두:
예전 같았으면, 이 일은 맡지 않았을 거야
북두:
나는 괜찮지만, 명절에 사조성 형제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순 없다고
응광:
물론이야.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… 그다음 말인데
북두:
하하하하! 하여간 뱃속에 능구렁이가 들었다니까…. 알았어 알았어!
북두:
경문(驚門) 고운각 맞지? 조율해 놓을게
응광:
정의로운 우리 선장이라면 거절 안 할 줄 알았어
북두:
말치레는 됐고, 형제들 몫이나 더 얹어 줘. 해등절이니까, 적어도 다섯 배는 줘야겠네
응광:
역시 쉽지 않다니까. 알았어, 네 몫은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줄게
북두:
누가 누굴 보고 하는 소리래, 내가 감히 천권 님을 거역할 수 있겠어? 좋아, 그럼 내 몫은 너한테 줄게, 새 비녀 좀 사
북두:
그것까지 내가 해 줄 필요는 없지? 하하하
북두:
하! 이거 旅人(이)랑 페이몬 아니야?
페이몬:
북두! 오랜만이야!
북두:
오랜만이야 페이몬, 이렇게 생기 넘치는 걸 보니 응광의 심부름꾼으로서 아주 제격이겠는걸
페이몬:
뭐?
북두:
하하, 급한 용무가 있어서 나 먼저 실례
북두:
아 그렇지, 해피 해등절
응광:
야란은 정말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건지, 말도 안 꺼냈는데 너희를 데리고 왔네
여행자:
우리를 심부름꾼으로 쓸 거라던데요
응광:
북두 선장은 늘 농담을 좋아하지
야란:
뭐 비슷하긴 해. 旅人와(과) 페이몬은 그곳에 가 봤으니, 더 적합한 인재는 없겠지
페이몬:
그곳? 그곳이 어딘데?
응광:
너희가 사람을 찾는 건 알고 있으니, 시간 낭비 없이 바로 본론을 말할게
응광:
내가 알기로, 호 당주, 치치, 남연 양 이 셋은 지금 경계에 갇혀 있어
페이몬:
경계?! 설마 그… 그 경계?
야란:
그래, 그 경계. 리월의 생사의 경계 말이야
페이몬:
자자잠깐만, 너희도 경계를 알아? 아니지… 우리가 거기에 간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?
야란:
응?
페이몬:
아… 야란… 맞다… 그래, 너 정말 대단하구나…
여행자:
생사의 경계에 있는 게 확실한가요?
응광:
의구심이 든다는 건 알아. 지금은 사안이 시급하니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줄게
응광:
일 개월 전, 총무부는 경책 산장 노인 환자들의 이상 병세를 발견했어
응광:
그로부터 보름 후, 호 당주가 리월의 생사의 경계에 이변이 발생한 것 같다고 알려왔고. 총무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보니, 무망의 언덕 일대에서 정말로 불길한 기운이 감지됐어
응광:
그리고 사흘 전, 호 당주가 다시 와서 준비를 마쳤으니 생사의 경계로 가서 사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했지
응광:
우리는 이틀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, 보다시피 당주는 오늘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어. 그래서 야란을 파견해 조사한 거야
야란:
당주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곳이 무망의 언덕이야. 또, 치치와 남연의 종적 역시 거기서 사라졌지. 십중팔구, 그녀들은 경계에 갇혔을 거야
페이몬:
호두까지 갇혔단 거야? 경계에 진짜 문제가 있나 보구나…
응광:
이게 대략적인 상황이야. 너희는 생사의 경계에 가본 적이 있으니, 호 당주 일행을 구출해 줄 수 있을까?
페이몬:
정말로 그런 거면, 묻지 않아도 당연히 갈 거야!
페이몬:
하지만 문제가 있어, 전에 우리가 경계에 갔을 땐 호두가 안내해 줬거든. 우리 둘만으로는 경계의 입구를 열 수 없어
여행자:
응광 씨는 방법이 있죠?
응광:
망서 객잔의 항마대성을 찾아가 봐. 그에게 방법이 있어
페이몬:
아! 소 말이구나!
응광:
훗, 너희가 오기 전에 야란도 경계에 들어갈 계획을 짜고 있던 터라, 연락은 취해뒀어
여행자:
알겠어요,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
응광:
旅人, 중요한 일이야. 반드시 호 당주 일행의 안전을 확보해야 해
여행자:
좋은 소식 갖고 올게요
응광:
그래, 여기서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을게
야란:
다행이야. 저 둘이 없었으면, 호 당주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지 나도 장담 못 했을 거야
응광:
하지만 아쉽게도, 야란, 너는 아직 쉬기엔 일러
야란:
…내가 또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지. 이번엔 무슨 일이야?
응광:
생(生), 두(杜), 경(驚), 상(傷). 네 가지 문의 진안 위치를 파악했어
야란:
오?
응광:
생문(生門)과 두문(杜門)은 각청과 감우가 맡고 있고, 경문(驚門)은 방금 북두 선장과 남십자 함대가 지키기로 했어
응광:
남은 건 상문(傷門)인데, 아무리 생각해도 항마대성을 제외하면 너만 한 사람은 없겠더라
야란:
응? 아…
야란:
…층암거연이구나
응광:
그래. 다른 네 가지 문의 위치도 지금 추산 중이니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
응광:
호 당주의 말대로라면, 최악의 경우 그 전설의 팔문 칠문 진이 필요할지도 몰라
야란:
……
응광:
걸리는 게 있구나? 말해봐
야란:
그 진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, 지금까지의 정보로 볼 때… 진을 시전하려면 대가로 한 사람의 존재가 지워져야 하는 거 아니야?
응광:
……
응광:
하아, 그건 나도 아직 모르겠어….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
페이몬:
소! 벌써 여기에 와 있었구나
소:
너희가 왜 여기에 있지? 야란은?
여행자:
옥경대의 전술에 조정이 좀 있었어
소:
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는 있어?
페이몬:
괜찮아, 旅人은(는) 안 가본 곳이 없다구. 안 그래?
소:
생사의 경계는 베일에 가려진 곳이야, 지금은 이변까지 생겼고. 사방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어
여행자:
괜찮아, 우리는 모두를 데리고 돌아올 거니까
페이몬:
맞아 맞아, 응광한테도 약속했는걸
소:
…가서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전해줘
페이몬:
왜?! 우리로는 안 돼?
소:
야란은 가문의 비전이 있고 경험도 많으니 큰 걱정은 안 돼. 하지만 旅人은(는),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…
페이몬:
旅人이(가) 걱정돼서 그랬구나. 하지만 旅人도 경험이 엄청 풍부하다구!
소:
……
페이몬:
旅人,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!
여행자:
우리는 종려 씨에게도 약속했는걸
페이몬:
어? 무슨…
여행자:
(종려가 준 제군 엽전을 꺼낸다)
페이몬:
어… 아! 이게… 맞아, 이건 종려가 준 호신 부적이야. 위에 암왕제군의 표식도 있잖아, 맞지?
페이몬:
종려가 우리한테 호두를 잘 데리고 돌아오라고 했어. 안 그랬다간 혼쭐이 날 거야!
소:
거짓말할 필요 없어. 이건 법력 하나 없이 제군의 표식만 있는 모조품에 불과해
페이몬:
으… 종려 이 자식 진짜 도움이 안 되네!
여행자:
뭐가 걱정되는 거야?
소:
내 업장이 경계를 어지럽힐 수 있으니, 난 함께 들어갈 수 없어. 밖에서 입구를 찾아주는 게 고작이야
페이몬:
무슨 일이 생겨도 못 도와줄까 봐 그래? 에휴, 마음은 이해하지만… 그래도…
여행자:
지금은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있잖아
페이몬:
맞아! 경계에 대해서는 호두가 제일 잘 아는데, 호두가 못 돌아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라구
여행자:
게다가 우리는 이미 경계에 가 본 적 있어
페이몬:
맞아 맞아, 호두를 제외하면 우리가 경험이 제일 많을걸!
여행자:
우리를 믿어줘
소:
하아…
소:
그렇다면, 나를 꽉 잡아
소:
여기야
페이몬:
소가 방금 본 게 정말 죽음의 기운이었나 봐!
소:
아까도 말했지만, 상황이 악화될 수 있으니 나는 들어가지 못해. 나머지는 너희에게 달렸어
여행자:
걱정하지 마
소:
그래…. 머리 좀 가까이 대봐
소:
가비유리! 인!
페이몬:
어? 소, 이건…?
소:
이마에 항마인을 남겼어. 이러면 너의 시야가 공유되어 내가 죽음의 기운을 봐줄 수 있지. 경계 안의 상황은 모르지만, 쓸모가 있을지도 몰라
소:
갇힌 자들을 찾으면 내 이름을 불러. 내가 통로를 열어서 너희를 데리고 나올게
페이몬:
헤헤, 소는 정말 듬직하다니까! 그럼 들어가 볼게
소:
조심해
치치:
치치, 졸려요…
호두:
자면 안 돼! 치치, 죽음의 기운을 너무 많이 흡수해서, 지금 잠들면 못 일어나!
치치:
하지만, 졸려요…
남연:
치치, 잘 들어. 넌 하나도 졸리지 않아. 넌 세상에서 가장 깨어있는 아이야. 설령 모두가 잠들어도, 너만은 깨어있을 거야
치치:
세상이, 자도… 치치는, 안 자…
호두:
대단해, 최면을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구나
남연:
하지만 이대로는 한계가 있어요…
호두:
조금만 더 버텨줘. 곧 출구의 규칙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
치치:
치치, 꿈꾸고 싶어요…
남연:
치치… 버텨!
호두:
꿈? 그건 어렵지 않아. 치치, 내가 꿈꾸게 해줄게. 잘 들어, 치치의 꿈은 이런 거야…
호두:
태양이 높이 뜨자, 치치는 약초를 따러 갔어
치치:
치치… 약초 따러 가요…
호두:
산을 오르니, 거기엔 사원이 하나 있었지
치치:
산에… 사원 있어요…
호두:
사원에는 노련한 도사가 있었으니, 그 이름하여, 호두!
치치:
호… 호두?
호두:
호두는 치치를 발견해 단숨에 땅속에 묻어 버렸어! 암왕제군도 못 찾을 정도로!
치치:
안 돼! 묻지 마요! 살려주세요…
호두:
이제 하나도 안 졸리지?
치치:
안 졸려요. 무서워요…
남연:
읏…!
남연:
이럴 수가, 호 당주님, 제가 설치한 환진이 망가졌어요!
호두:
마물들이 날뛰면서 한 짓인가?
치치:
마물…
남연:
무서워하지 마, 치치. 우리가 지켜줄게
페이몬:
호두! 남연, 치치! 드디어 찾았다!
호두:
어? 너희들이었구나!
치치:
旅人, 페이몬…
남연:
깜짝 놀랐네, 마물이 내 환진을 깨트린 줄 알았어. 너희는 어떻게 여기에 온 거야?
호두:
천권 씨가 보낸 거지? 내가 안 나타나니까 바로 움직였나 보네
페이몬:
호두는 정말 똑똑하네! 응광이 다 계획해 놨더라고, 우리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왔을 거야
여행자:
여긴 위험하니까, 일단 나가고 보자
남연:
하지만 이 공간은 계속 변하고 있어. 호 당주님이 출구를 몇 번 찾아냈지만, 매번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닫혀버리더라고
페이몬:
헤헤, 우리한테 방법이 있지
여행자:
(소의 이름을 부른다)
소:
사람들은, 찾았어?
호두:
항마대성도 와 줬구나, 고마워!
소:
아니야. 내가 통로를 열지
치치:
마, 마물이에요!
남연:
이런, 이곳에 죽음의 기운의 출구가 있다는 걸 감지한 거야
호두:
흥, 마물이고 뭐고, 본 당주가 모조리 쫓아내 주지
소:
일 분만 버텨…
페이몬:
旅人, 어서 저 마물들을 막자!
치치:
치치, 도울게요
응광:
벌써 좋은 소식을 갖고 왔니?
페이몬:
아… 아직이야, 지금 막 출발하려던 참이라구!
페이몬:
헤헤, 소, 봤지? 우리가 할 수 있댔잖아
소:
무사히 나왔으니 됐어
남연:
이분이 바로 그 전설의 항마대성이신가요?
소:
예의 차릴 필요 없어. 다들 괜찮나?
호두:
우린 괜찮아, 치치가 죽음의 기운을 너무 많이 흡수하긴 했지만
여행자:
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 줄래?
치치:
치치, 약초 따다, 구멍을 발견했어요…
치치:
막으려고 했는데…
치치:
결국은, 떨어졌어요…
남연:
치치는 평범한 아이가 아닌 것 같네, 죽음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니…. 나였으면 이미…
호두:
치치가… 체질이 특수하긴 하지만, 이런 상태로는 위험해
페이몬:
그럼 우리 치치를 먼저 불복려에 데려다줄까?
소:
내가 데려가지. 너희는 아직 임무 수행 중이니, 먼저 옥경대로 돌아가
페이몬:
그것도 그렇네…. 응광은 분명 달궈진 냄비 위의 슬라임처럼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
여행자:
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
페이몬:
아무튼 일단 돌아가자. 다른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
페이몬:
응광! 응광! 우리가 모두를 데리고 돌아왔어!
응광:
역시 旅人은(는) 대단하네. 내 예상보다도 더 빨랐어
페이몬:
뭐야, 안절부절못할 줄 알았는데. 옥경대에 느긋하게 앉아서, 당황하지도 않아 보이네
여행자:
말했잖아, 전혀 슬라임 같지 않다니까
응광:
후후, 그만큼 널 믿고 있다는 거지. 아니면 내가 누구를 또 신뢰하겠어
호두:
정말 미안해, 천권 씨. 본 당주는 원래 늦는 일이 없는데, 이번엔 하루를 지체해 버렸네. 너그러운 이해 부탁할게!
응광:
무슨 그런 농담을. 호 당주를 혼자 경계로 보낸 건 내가 경솔했지. 모두가 갇힌 데에는 내 책임도 있어
호두:
아니지 아니지, 나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는걸
여행자:
얼마나 심각하길래?
응광:
말해줘.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지? 이전과 비교해서는 어때?
호두:
많이 심각해, 아주 정말 엄청 진심으로 심각하지
남연:
네? 이번 한 번이 아니었다는 건가요? 저는 금시초문이에요
호두:
음, 경계는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게 아니야. 마치 오래된 집처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
호두:
짧으면 십 년, 길면 수백 년마다 누군가가 관리해야 해. 그걸 하는 게 바로 우리 왕생당이야
호두:
이전까지는 죽음의 기운이 조금 흘러나오는 정도였고, 비술로 전부 소각할 수 있었어. 하지만 이번 건 전대미문이야. 경계 안쪽이 완전히 난장판이었어
응광:
원인은 파악했어?
호두:
나도 아직 모르겠어
여행자:
혹시 심연이 원인일까?
호두:
하지만 심연이 남긴 흔적은 발견 못 했는걸
페이몬:
旅人, 나타가 떠올라서 그래? 나도 좀 비슷한 것 같긴 한데… 또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…
페이몬:
나타의 밤의 신의 나라가 리월의 생사의 경계 같은 건가?
응광:
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나도 들었어.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 밤의 신의 나라는 진정한 죽은 자의 땅이야. 경계는… 생사를 가르는 관문 같은 것에 더 가깝지
호두:
맞아. 이쪽은 생, 저쪽은 사. 이 관문이 무너지면 수천 년 전 이승과 저승이 뒤집혔던 혼돈의 난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어
페이몬:
어쩐지 환자가 겪는 문제가 노화에… 수명 단축이더라…
호두:
그게 바로 사가 생을 침범하면 생기는 현상이지…
남연:
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?
호두:
이제 죽음의 기운을 소각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돼. 문제의 핵심은 경계에 있어. 천권 씨, 내가 전에 말한 팔문 칠문 진은 좀 가망이 있어?
응광:
있어. 게다가 네 가지 문의 진안 위치는 이미 알아냈고, 나머지도 얼마 안 걸릴 거야
호두:
이렇게 빨리? 역시 천권 씨야!
응광:
운이 좋았어. 리월의 기운 덕이지
페이몬:
자, 잠깐만! 너희가 말하는 게 설마 그 팔기연도도의 진은 아니지?!
호두:
그거 맞아. 너희도 경계의 상태를 봤지? 새로 정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
페이몬:
새로운 경계를 정련한다구?!
호두:
새로운 경계를 정련하는 게 아니라, 문제가 있는 경계를 새로이 정련하는 거야. 듣기엔 비슷해도 이쪽이 훨씬 쉽지
여행자:
팔문 칠문 진이 대체 뭐야?
호두:
팔문이란, 리월 지맥의 중요한 여덟 지점을 뜻해. 생사휴두(生死休杜)와 개경경상(開景驚傷)으로, 지맥의 힘을 인도할 수 있지
페이몬:
그럼 칠문은?
호두:
진법을 발동하는 조건이야. 진을 유지하는 자가 팔문 중 하나를 택해 사악한 것을 진압하고, 다시 지맥의 힘으로 자신을 지워 사악한 것의 퇴로를 끊는 거지
페이몬:
…지운다고?
남연:
말 그대로 사악한 것과 함께 자신을 지맥 속에 지우는 거야.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지
페이몬:
그… 그건 그냥 죽는 거나 다름없잖아…. 꼭 이 진을 써야 해? 그렇게 되면…
호두:
에헤이, 안심해. 다들 전설 속 저승 나비 선인이 이 과정에 희생돼서 걱정하는 거지?
호두:
하지만 그때 정련한 건 무려 마신이었다구. 이번 일도 심각하긴 하지만, 그때랑 비교할 수준은 아냐. 경계도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으니 통으로 새로 정련할 필요도 없고
호두:
과다한 죽음의 기운으로 인한 충격만 견뎌내면 진을 유지하는 자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
응광:
호오? 그 주장의 근거는?
호두:
근거는 바로, 내가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생과 사, 이승과 저승에 대해 잘 안다는 거지. 헤헤, 어때? 반박 못 하겠지?
호두:
음, 할 말 없으면 다들 동의한 걸로 알게. 천권 씨가 나머지 네 개의 문 위치를 추산해 내면, 다음 행동을 계획하기로 하자
응광:
호 당주…
호두:
응? 다른 의견이라도 있어?
응광:
아니… 다른 질문이 있어.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니, 대답하기 싫다면 못 들은 셈 쳐주길 바라
호두:
무슨 일인데?
응광:
호 당주는, 십수 년 전 무망의 언덕의 재앙과 오늘의 경계의 위기가 관련이 있다고 봐?
호두:
……
페이몬:
어? 십몇 년 전의 무망의 언덕?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?
남연:
무슨 자연재해였던가? 그쪽에 원래 마을이 있었는데, 홍수 때문인가로 사람들이 죽고 남은 사람들도 다 떠나 버렸대
남연:
흠… 하지만 이걸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. 왜 오늘날 무망의 언덕이 해도 보이지 않는 곳이 된 거지? 혹시… 숨겨진 사정이라도 있나?
호두:
후우…
호두:
천권 씨, 둘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어
응광:
그래, 그럼 나도 안심이야. 모두들, 이틀 뒤 이곳에서 다시 보자. 그때가 되면 모든 팔문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야
호두:
그럼 나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서, 먼저 왕생당으로 돌아갈게
남연:
네, 저도 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실례할게요
페이몬:
참, 남연, 깜빡할 뻔했는데, 전에 호두를 찾았던 이유가 경계에 문제가 생긴 걸 알아채서 그랬던 거야?
남연:
하하, 그거? 일찍 말해줄 걸 그랬네. 아니면 이따 모험가 길드로 나를 찾아올래? 먼저 집에 문안 편지를 보내고, 뭐 좀 물어보려고
페이몬:
그럼 나중에 모험가 길드에서 만나자!
응광:
음…
여행자:
응광 씨, 왜 그래요?
응광:
십수 년 전 무망의 언덕의 재앙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. 호 당주가 별개의 일이라고 하니, 더 캐물을 순 없지만…
남연:
旅人, 페이몬! 여기야 여기! 딱 맞게 왔네, 지금 막 편지를 보낸 참이거든
남연:
너희는 내가 무슨 대단한 법술로 경계의 위기를 예측했다고 생각하는 거지?
페이몬:
응 맞아, 다들 침옥 협곡의 남씨 가문은 무슨 엄청난 기문술을 부린다고 하던데, 아니었어?
남연:
그건 다 오해야. 남씨 가문에 기문술이 계승되는 건 맞아. 족보대로라면 그 바람각을 읽는 영관이 선조인 것도 맞고
남연:
하지만 우리 집안은 종가에서 갈라져 나온 지 오래야. 선조의 기문술은 할아버지 대에서 강호의 묘기 정도로 전락했지
남연:
솔직히, 할아버지는 유롱항에서 점괘를 보시는데, 벌이는 내가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못하셔
페이몬:
어? 그럼 호두는 왜 찾은 거야?
남연:
사실은 얼마 전에, 할아버지의 점괘에 문제가 생겼거든. 혼인괘랑 사업괘는 괜찮았는데, 천수괘는 누가 됐든 모조리 단명인 거야. 할아버지가 정말 많이 놀라셨어
남연:
손님에게 욕먹지 않으려고, 할아버지는 일을 접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밤낮으로 점을 치셨어. 마지막에 「왕생당」이라는 세 글자가 나왔는데,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시겠더래
남연:
마침 그때 내가 총무부로부터 행사 준비를 도와달라는 초대를 받아서, 겸사겸사 왕생당의 호 당주님께 아시는 게 있나 물어보려 했던 거야
페이몬:
아… 그러면… 사실 할아버지는 점을 제대로 친 거 아냐? 위기가 터진 후의 결과랑 왕생당에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낸 거잖아!
남연:
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. 모든 산 자가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는데, 이걸 아는 건 우리뿐이네
여행자:
그럼 이 등나무 인형은 어떻게 된 거야?
남연:
어? 이건 내가 앵아 님 가게에 남겨 놓은 거잖아? 사실 이게 정통 기문술이야. 위에 고대 항마인이 새겨져 있어서 사악한 기운을 흡수하고 재앙을 대신 막아주지
남연:
네 손에 넘어갔을 줄은 몰랐네. 하하, 인연인가 봐, 괜찮으면 계속 갖고 있어
남연:
처음 리월항에 도착해서 큰 저택을 지날 때, 음산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길래 이 등나무 인형을 만들어서 거기 도련님한테 줬어
남연:
나중에 그 데마로우스 님한테서도 같은 기운을 느껴서 또 등나무 인형을 만들고 춘향요에 남겨 뒀지
남연:
나중에 호 당주님을 쫓아 무망의 언덕에 갔더니, 당주님은 사라져 있고, 도처를 둘러보다 치치를 만났는데, 꼭 뭔가를 막고 있는 것처럼 산의 틈새 사이에 끼어 있는 거야
남연:
그래서 치치를 당겼다가, 빼내기는커녕 도리어 같이 음산한 곳에 떨어지고 말았어. 그곳이 바로 그 경계였지
남연:
이후 우리는 경계를 헤매다 호 당주님을 만났어. 당주님은 향을 피우고 불 막대를 꺼내 곳곳의 죽음의 기운을 불태우셨지
남연:
하지만 죽음의 기운이 너무 많은 나머지, 다 태우기는커녕 우리가 들어온 입구까지 막아 버린 거야. 그렇게 경계 안에 갇히게 됐어. 너희가 와줘서 정말 다행이었지!
페이몬:
그런 일이 있었구나… 역시 남연네 집안도 엄청 대단하네 뭐! 전에 경계 안에서도 진을 설치했었잖아?
남연:
사실 등나무 인형이랑 같이 어느 종가의 언니로부터 배운 거야. 언니는 어릴 적부터 기문술을 배웠거든. 내가 편지를 쓴 것도 언니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야
여행자:
팔문 칠문 진에 대한 거야?
남연:
어떻게 알았어? 맞아, 정말 한 사람이 지워져야만 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거든. 언니라면 알지도 몰라서
페이몬:
어? 하지만 호두가 그랬잖아? 죽음의 기운을 견뎌내기만 하면 된다며?
남연:
음… 나도 물론 그러길 바라지만, 그래도 불안해서. 호 당주님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, 내가 볼 땐… 자기 고민을 숨기는 사람 같았거든
남연:
과묵한 편도 아니고 직설적이지만, 정작 자기 본심은 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. 마치 모든 일을 다 안배해 둔 것처럼…
페이몬:
설마… 호두가 우리를 속였다는 거야…?
남연:
속인 건 아니겠지만… 아까 천권 님이 언급하신 십수 년 전의 무망의 언덕 일 기억해?
페이몬:
기억해! 호두가 지금의 위기랑 관계가 없다고 했는데… 관계가 있는 거야?
여행자:
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?
남연:
홍수가 있었다는 정도만. 다만 현재 상황을 볼 때, 경계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. 그럼 지금 무망의 언덕의 이상한 날씨도 설명이 되거든
남연:
본가 언니가 그랬는데, 그때 왕생당이 무망의 언덕에 제단을 설치했었대. 원래는 제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, 지금 보니 경계에 쓸 의식용이었을 수도 있겠어
남연:
그때 의식을 진행한 사람이 바로 왕생당의 이전 두 당주, 즉 호 당주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셨대
페이몬:
호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?! 아버지에 대해선 말한 적이 없었는데… 정말 무슨 속사정이라도 있는 걸까?
남연:
음… 그치만 아까 천권 님이 물어볼 때도 아무 말 안 하셨으니… 안 지 이틀밖에 안 된 나는 더 물어보기가 힘들어
여행자:
우리 호두한테 가 보자
페이몬:
어? 가서 물어보게…? 그치만… 호두가 말하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려구?
페이몬:
휴, 아무튼 일단 가서 확인해 보자
호두:
……
페이몬:
호두!
호두:
旅人(이)랑 페이몬이네! 뭐야, 방금 헤어졌는데 벌써 내가 보고 싶어진 거야?
페이몬:
맞아, 그래서 놀러 왔지. 방금은 뭘 보고 있었어?
호두:
좋은 걸 보고 있었지. 근데 너희는 보면 안 돼
여행자:
몰래 내 사진을 숨겨둔 건 아니지?
호두:
하하, 그런 농담은 안 좋아. 불길하거든
여행자:
불길하다니?
호두:
이 초상화 속 사람들이 요즘 자꾸 꿈에 나오는데, 나 말고는 이미 세상에 없어
호두:
하하, 농담은 그만할게. 이거 봐봐
페이몬:
어? 이건…?
호두:
응,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야. 이 초상화가 없었으면 난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 못 했을걸? 아버지가 가실 때는, 내가 아직 어려서 기억이 없거든
호두:
그래서 아버지에 관한 건, 전부 할아버지가 말해 준 것들이야
여행자:
그럼 아버지는…?
호두:
십수 년 전 무망의 언덕의 경계에 이변이 일어났을 때, 호마의 비술로 죽음의 기운을 불태우셨어. 그때 죽음의 기운에 너무 물들어서 자신을 희생하셨지
페이몬:
뭐? 어떻게 그런 일이… 그럼 지금의 무망의 언덕은…
호두:
응, 아버지의 실패 때문이기도 해. 아버지 자신만 희생된 게 아니라 수많은 마을 사람들도 피해를 봤어. 그 후 무망의 언덕은 지금 같은 상태가 됐고
호두:
이후, 할아버지가 대신 수습을 하셨지만, 할아버지도 환갑을 넘기기도 전에 임종에 드셨지…
여행자:
할아버지도 영향을 받으신 거야?
호두:
할아버지는 아니라고 하셨지만, 원래 늘 건강하셨으니 그 일이 아니었으면 더 오래 사셨을 거야…
페이몬:
호두… 혹시 아버지가 원망스러워…?
호두:
어떻게 안 그러겠어? 아버지가 무능한 사람이었으면 나도 원망하지 않았을 거야. 하지만 아버지는 천재셨어. 아버지의 법술은 우리보다 훨씬 강력했지
호두:
할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에 왕생의 법술을 터득하는 걸 보고 재능이 있다고 했어. 하지만 아버지는 여덟 살에 이미 홀로 제례와 죽음의 기운 소각 일을 주관했지
호두:
그런 사람이 그렇게 작은 문제도 해결 못하다니, 어떻게 원망을 안 해?
페이몬:
하… 하지만 그건 또 왜 그랬던 건데?
호두:
왕생당 당주에 적합하지 않았던 거지. 역대 당주들은 떠날 때 자기 물건을 전부 갖고 갔어. 남겨도 한두 개 남기고, 그 외엔 전부 불태우지
호두:
할아버지는 왕생당의 모자만 남기셨는데, 아버지가 남긴 건 한 무더기는 될 거야. 이 아무 의미 없는 초상화도 그중 하나고…
페이몬:
너희가 아버지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겠지…
호두:
아니, 이건 그저 아버지의 미련일 뿐이야. 실패한 원인 역시 미련 때문이고
호두:
연로한 할아버지와 어린 나, 그리고 모두가 있는 이 세상을 향한 미련
호두:
그래서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주저하고 두려워했고, 불안한 마음에 죽음에게 패배했어. 수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했고
호두:
우리가 일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게 미련이야. 하지만 당주로서 가장 멀리해야 하는 것도 미련이지
호두:
할아버지는 늘 삶과 죽음엔 때가 있다고 하셨어…. 왕생당의 전부가 담긴 문장이지
호두:
아쉽게도 아버지는 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셨어. 정말이지…
페이몬:
그렇게 말하지 마…. 네 아버지도 이렇게 되길 원하진 않았을 거야…
호두:
페이몬은 뭘 모르네. 우리 아버지니까,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
호두:
세상 모든 아버지는 제멋대로인 딸을 구박하지 않아. 자신이 없어지면 딸이 더는 제멋대로인 아이로 살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
호두:
그래서, 내가 아버지를 내 맘대로 말하는 거야. 아버지가 들으면 내가 잘 지내는구나 하고 안심하실 테니까…
호두:
자, 여기까지 무망의 언덕의 과거사였습니다. 더 알고 싶은 거 있어?
여행자:
얘기해 줘서 고마워
호두:
후후, 내가 숨길 거라 생각했어? 우리가 어떤 사인데~
호두:
게다가 나를 경계에서 데리고 돌아와 준 걸 어떻게 감사할지 고민 중이었거든. 그러니 물어보면 알려주고, 안 물어봐도 알려줘야지
페이몬:
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확인할게! 호두가 오늘 말한, 팔문 칠문 진을 시전할 때 누가 희생될 일은 없다는 거, 그거 진짜지?
호두:
응. 나는 그렇게 생각해!
페이몬:
그럼 좀 마음이 놓이네
호두:
너무 고민하지 마, 아직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거리 행사를 최대한 즐기라구. 일과 휴식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고 네가 그랬잖아?
호두:
이틀 후에 옥경대에서 보자. 이번에야말로 죽음을 잿더미로 만들어 보자구
호두:
푹 쉬어, 이틀 후에는 쉴 틈도 없을 테니까
소:
조심해
남연:
빨리 답장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